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90년대 들어 일본에선 경제운용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관료주의와 시장주의간 치열한 투쟁이 벌어져 왔다.
전후 일본경제를 부흥시킨 과거 공적을 내세우는 관료조직에 대해 민간
부문은 경제적 자유와 규제완화를 외치며 공격을 가해왔다.
일본의 불행은 두 세력간 투쟁 속에서 국가 지도자가 대체로 관료쪽
의 편을 들었다는 점이다. 재정기반 확충을 이유로 작년 4월 실시된 소
비세 인상조치가 대표적 예이다.
당시 민간 경제전문가나 재계에선 겨우 살아나는 경기상승세에 찬물
을 끼얹을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하시모토 총리는 대장성 등의 낙관론에
따라 세율 인상(3%→5%)을 단행했다. 이 조치는 결과적으로 대실패였으
며 현재의 경제위기를 낳은 직접적 기폭제가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세금을 내려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오히려 세수도 늘
어난다는 생각을 관료들은 못한다"고 공격한다. 자민당의 정치지도자들
도 이런 관료의 구시대적 논리에 세뇌당해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90년대초 버블(거품)붕괴로 불황이 닥쳤을 때 재계와 민간연구소들은
대규모 감세조치를 최우선 과제로 요구했다. 하지만 대장성은 재정악화
를 이유로 한사코 반대했고, 가이후, 미야자와 내각은 관리들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그 결과 경제를 회복시킬 타이밍을 놓쳤다. 규제완화를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역대 정권이 매번 시도했던 규제완화 정책
은 관료들의 저항으로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대장성에서 금융기
능을 분리하는 문제나 우정 사업의 민영화가 좌절된 것 등이 그 예이다.
정치평론가 야야마 타로는 "관료의 이해와 민간의 요구가 정면으로 맞
붙었을 때 하시모토 정권은 늘 관료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쏘아붙인다.
그 결과 일본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의 42.3%(94년기준)는 아직 관
료의 규제를 받고 있다. 미국은 6.6%(88년)에 불과하다. 미국 경제가
승승장구하는 반면 일본에선 시장의 활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결정
적 차이이다.
작년말 사상최대의 도산기록을 세우고 쓰러진 야마이치(산일)증권도
'관료의 실패' 사례다. 대장성은 이미 3년전에 정리됐어야 할 야마이치
에 대해 2천여억엔의 손실을 장부외로 처리하도록 지시 내지 묵인함으
로써 생명을 연장시켜 주었다.
70조엔에 달한다는 부실채권에 대해서도 관료집단은 쉬쉬하며 금융
기관을 싸고돌기만 해 조기정리에 실패했다. 금융규제 철폐를 의미하는
'금융빅뱅(대개혁)'은 미국이나 영국에 10년 이상 뒤졌다. 한국에서도
이미 작년에 허용된 셀프서비스 주유소가 일본에선 며칠 전에야 비로소
규제가 풀렸다.
물론 일본경제를 폐허 속에서 일으켜 세운 일등공신이 관료집단이란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은 평론가 사카이야의 지적대로 '관
료 신화와 60년대식 경험법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시대'이다.
민간 인사들은 관료 브리핑으로 가득찬 일정표를 하시모토 총리에
게 들이대면서 "관료들을 그만 만나라"고 다그치고 있다. 다행히 하시
모토정권과 자민당 집행부도 최근 들어 시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언론은 반색하고 있다.
하시모토 총리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임을 인정했고, 그토
록 버텨오던 감세(4조엔내외) 요구도 결국 수용했다. "3월 이후 총리의
관료면담일정이 부쩍 줄었다"(마이니치신문)며 반기는 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탈관료주의'의 결단이 너무 늦었다는 느낌을 준다.
(동경=박중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