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의회에서도 '서리 체제 논쟁'이 한창이다. 문제의 발단은
작년 12월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의회 다수당인 야당 공화당의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중국계 이민 2세인 빌 랜 이(48)를 미국 법무부의 소
수인종 권리보호담당 차관보에 임명한 데서 비롯됐다.

작년 가을부터 가열되기 시작된 그의 차관보 임명 논란에서 공화당
은 그의 과거경력을 문제삼고 있다. 대표적인 소수인종 권익 옹호자로
활약해 온전력을 볼 때, 그가 중앙정부에서 이 일을 관장케되면 소수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다수가 피해를 보는 이른바 '역차별'이 벌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공화당은 인준 청문회가 본격화될 경우 예상되는 소수 인종들의 반
발을 우려, 청문회 자체를 봉쇄했다. 이에 맞서 클린턴은 "제대로 된
청문회와 투표가 이뤄진다면 그 결과를 따르겠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
논란의 끝이 보이지 않자 클린턴은 "더이상 국정공백을 좌시할 수 없다"
며 '무기한 서리체제'를 강행했다.

미국의 여-야는 최근 또 다시 이같은 서리체제가 얼마까지 지속되는
것이 '합법'인가를 놓고 격돌중이다. 통상 1백20일이 그 상한선으로 받
아들였지만 그 관행은 별로 지켜지지 않아왔다. 93년 출범한 클린턴 정
부만해도 무려 63명이 '서리'라는 딱지를 달고 우선 임명된 뒤 청문회
를 통과했고, 이중 43명은 1백20일을 훨씬 넘게 서리로 일해온 것으로
집계됐다.

공화당의 프레드 톰슨 미국 상원 정부문제 위원장은 "상원인준이라는
헌법적 권한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서리체제의 시한을 두는 방안을 주
장했다.

여당인 민주당 쪽은 반대로 "청문회 개최와 투표 조차 봉쇄하는 의
회의 행위도 제한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현재 미국 상원에서는 이
처럼 서리체제 문제를 해결키 위한 법안들이 제출되면서, 논란이 가열
되고 있다.

하지만 시계추를 92년 이전으로만 돌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케
된다. 공화당 대통령에,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에서 똑같은 사람들이
지금과는 정반대되는 주장을 하며, 격돌하는 모습이다. 세계 어디에서
나 정쟁은 너무도 자주 닮은 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문에 국민들이 갈수록 정치를 혐오하는 것까지 똑같다.(박두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