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0장 악몽⑤ ##.

원래도 도주 같은 것은 생각해본 바 없었으나 그들의 숨겨진 무장
을 보자오히려 인철은 그 충동을 느꼈다. 자신이 그토록 엄중한 호송
을 필요로 하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두렵고 불안해진 까
닭이었다. 이건 할머니의 말씀대로 우선 피하고 보아야 하는 첫물머
리가 아닐까.

그런데 그 충동을 억누른 것이 서울역에서 받은 또다른 종류의 대
우였다.

인철을 가운데 세운 두 형사가 이제 막 개찰이 시작된 개찰구를
지나면서각기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내보였다. 그러자 달갑잖은 눈으
로 신분증을 확인한 개찰원이 가운데 있는 인철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뒤따라 오던 형사가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상범이오! 수사상 필요해 임의동행 중이고.".

그 말에 개찰원이 흠칫하며 인철을 보더니 누구에겐지 모르게 고
개까지 가볍게 숙이며 공손하게 받았다.

"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인철은 오래오래 그때 그 개찰원의 눈길을 잊지 못했다.
말 그대로의 경외 곧 우러름과 두려움이 묘하게 얽힌 눈길이었다.그
가 한말도 어쩌면 인철에게 한 말이 아니었을는지 모르지만 인철은
왠지 자신을 향해 하는 말로 들었다. 그들 앞뒤에서 형사의 말을 들
을 수있었던 여행객들의 눈길과 반응도 마찬가지였다.한편으로는 끔
찍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까닭 모를 위압과 경외를 느끼는 눈
길과 표정으로 자신을 살피고 있는듯했다.

(사상범….).

기차에 오르면서 인철은 새삼스런 느낌으로 그렇게 되뇌어 보았
다.유년의 추억속에서 그말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던가. 아버지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기도 한 그말은 또한 불행과 재앙의 동의어이
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경외심을 일으키기도 했
는데 인철은 그걸 핏줄의 몫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날 사람들의 눈
길과 표정에서 읽은 것은 그게 아버지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 아
니라 사상범 일반에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이라는 점이었다.

어쩌면 한 혁명가를 길러내는 정신적 기제 중에 하나는 바로 사
람들의 그같은 반응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무겁게 인
식시킨다는 것만큼 인간의 허영에 유혹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데 사상범이 되는 것은 바로 그 지름길이 된다.

이미 아버지 대에서 피와 불의 세례를 받은 뒤라 인철에게는 내
쳐 그길을 가도록 하는 효과까지 내지는 못했지만, 그같은 사람들의
반응이준 변화는 컸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눈
길을 의식하게 된 것이 그러했다. 어쨌든 이 대처에 천박하거나 비
겁해서는 안된다. 기차에 오르면서 인철은 그런 돌연한 결의까지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