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나의 행동이) 무책임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국장
으로서 그렇게 작은 부분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
18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를 TV를 통해 지켜본 일본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작년말 도산한 야마이치 증권의 감독 책임을 둘러싸고 증인으
로 불려나온 마쓰노 전대장성 국장은 시종 여유가 넘쳤고 때때로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분식결산으로 거액의 장부외 부채를 숨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것아
니냐는 추궁에, 그는 "모른다" "기억이 안난다"로 일관했다. 참다못한
한의원이 "당신은 해설자가 아니라 감독자의 위치에 있지 않았는가"고
호통을 쳤지만 별로 동요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증권 행정을 총괄하
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국가신용도를 일거에 실추시킨 대형 금
융파탄사건 앞에서 당당하기 짝이 없었다.
며칠전 통산성이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도 '관료의 당당함'이 문제가
됐다. 와타나베 사무차관은 "저녁 회식 등에서 기업에게 일절 비용을 부
담시키지 말라면 그만큼 예산을 더 줘야한다"고 '소신'을 피력했다.그는
공무원윤리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무시된 것을 빗대어
"좋은 행정은 대화를 통해야 하는 법"이라고 정치권에 점잖은 충고까지
곁들였다.
일본식 재량행정의 실패, 업계와 유착 등으로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
아온 관료사회가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혼네'를 드러낸 것일까. 이들 고
위 관리들의 당당함을, 다나카 슈세이 전 경제기획청 장관은 '통치자 의
식'으로 설명한다. 그는 최근 한 잡지와의 대담에서 "관리들은 자기들이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오죽하면, 대장
성관료의 부패비리로 검찰 수사관들이 대장성을 압수수색했을 때 아수라
장이 된 금융검사부의 한 간부가 "당신들 정말 나라를 무너뜨릴 작정이
냐"고 목소리를 높였을까.
그는 평소 존경하던 한 고위 공무원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현재
사회경제적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은 나라를 통치하는 우리들(관료)의 일
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결과"라고 적었더라고 소개하면서,
"통치자 의식은 깨끗한 공무원이건 부패한 공무원이건 차이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관료의 통치자 의식'은 한국도 일본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IMF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리더그룹은 자신들 밖에 없다고 내심 자부하던 구
재경원이 재경부로 간판을 바꿔달았지만, 관리들의 생각이 얼마나 바뀌
었는지는 의문이다. (이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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