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한파와 무관, 무책임 위험수위...문의전화 급증 ##
지난달 27일 오후 6시 서울 명진보육원(원장 황용규).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아이들이 지하 1층에 마련된 식당으로
모두 모이는 시간이다. 한솥밥을 먹는다고 하기에는 조금 많은 77
명의 아이들이 김치와 탕수육, 밥 등으로 조촐하게 차려진 식판을
놓고 앉아 있었다.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은지 재잘대는 아이들때
문에 식당안은 늘 시끌벅적하다.
"형, 이것 좀 먹어봐." 영우(4)는 현우(6)에게 길다란 김치 한
가닥을 쭉 뽑아 내밀며 씩 웃었다. 작년에 입소한 이들 형제는 아
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후 빚어진 가정불화로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
버지에 의해 이곳에 맡겨졌다.
식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각자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94년에
신축한 연립주택식 4층 건물에 마련된 5개의 생활관에는 한방에 5∼
8명씩 들어갈 수 있는 3개의 방이 마련돼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지영(13·여)이는 제3 여자생활관에 마련된 10
평의 방에서 7명의 다른 여자아이와 함께 산다. 아이들 중 언니격
인 지영이는 '어머니'(보육교사) 대신 정경이(6), 지영이(6), 은영
이(5)를 돌봐야 한다. 이날도 아이들이 손발을 씻는 것을 도와주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혀 주었다.
친동생인 호영이(12)는 제법 제 앞가림을 할 줄 알지만 더 신경
을 쓰게 된다.
건축업을 하던 지영이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심한 말다툼 끝에
이혼한 것은 88년. 단란했던 가정은 하루 아침에 깨지고 아버지마
저 사고로 허리를 다치자 이들 자매는 89년에 이곳에 맡겨졌다. 그
뒤 직장을 되찾고 재혼을 한 아버지는 97년 3월 아이들을 다시 데
려 갔다. 하지만 지영이는 새어머니와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었다.
말수가 적어졌고 학원도 빼먹기 일쑤였다. 다시 보육원으로 보내달
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며칠간 물 한모금 안마시며 학교도 가지
않았다. 어렵게 꾸려진 재혼가정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지난 1
월 아버지는 또 다시 이혼했다. 이들 자매도 지난 4일 다시 이곳에
왔다.
이 방에 사는 아이 8명 중 5명이 지영이와 같은 처지. 은영이는
어머니의 외도로 95년 가정이 깨어진 후 언니 귀혜(7)와 함께 이곳
에 맡겨졌다. 정경이도 식당조리사였던 아버지가 95년 나이 차가
많아 평소 말다툼이 잦았던 어머니와 헤어진 후 이곳에 왔다. 이외
에도 보육원 유치부에 있는 10명 중 부모가 이혼하거나 별거해 들
어온 아이가 6명이다.
아이들은 집안 이야기를 시시콜콜 물어보는게 싫다는 표정이다.
다시 들춰내기 괴롭다는 것이다.
명진보육원 입구에 있는 간판은 작은 글씨로 쓰여져 있다. 아이
들이 창피하다며 없애자고 했기 때문이다. 황 원장은 규정상 그렇
게 할 수는 없어 대신 눈에 띄지 않게 바꿨다.
보육원 아이들은 황 원장을 아버지라 부른다. 학교에서 일이 있
으면 황 원장이 아버지 역할을 한다. 황 원장은 "아이들의 부모에
게 기회있을 때마다 자주 아이를 찾아오라고 하지만, 내 앞에선 그
런다고 해놓고 실천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작년 말부터 아이를 맡길 수 없겠느냐는 부모들의 상담전화가
부쩍 늘고 있어요. 창피한 줄 모르고 태연하게 묻는 부모들이 태반
입니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퇴근 준비를 하던 한 교사
는 말꼬리를 흐렸다.
밤 9시 30분이 지나자 TV를 보며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은 하나
둘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방에 전등이 꺼지면 아이들은 엄마-아빠
꿈을 꾸기 시작한다. ( 김인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