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엿보기 심리' 자극하는 관찰자적 관점 고집…다양한 독자층 ##.

"현실에서 못해본 일을 맘대로 다 해볼 수 있잖아요.".

서울 신촌동 작업실에서 만난 소설가 은희경(39)씨는 소설쓰기의 매
력을 이렇게 말했다. 나즈막한 전화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익살스
러움이 묻어났다. 그녀는 "평생 못해볼 일도 소설 속 주인공들에겐 맘
껏 시켜볼 수 있다"면서 "그래서 글쓰기가 신이 난다"고 했다.

신명이 나서 원고지를 메우다보니 인기가 따르는 걸까. 30대 중반의
늦깎이로 95년 문단에 데뷔한지 3년 밖에 안됐지만 그녀 소설의 인기는
끝을 모르고 달리고 있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과 '타인에게 말걸기'
가 각각 17만부, 10만부 넘게 팔려 신경숙 이래 또 한 명의 대형 여성
작가가 탄생됐다고들 한다. 이젠 그녀의 소설이라면 '은희경'이란 보증
수표를 믿고 무조건 사겠다는 독자들까지 생겼다.

대중성만 확보한 게 아니다. 등단한 이래 매년 굵직굵직한 상을 타
고 있다. 96년 문학동네 소설상, 97년 동서문학상을 타더니 이번엔 소
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거머줬다. 3년 된 신진
작가가 수상하긴 이상문학상 역사 22년만에 처음 있는 일. 그야말로 고
속질주다. 은씨는 그저 "문운이 좀 따른 것 같다"는 정도로 말하지만
그녀가, 그녀의 소설이 인기를 끄는 데엔 남다른 이유가 있는 듯 하다.

그녀의 소설은 '잘 읽힌다' '편안하다'는 말을 듣는다. 은씨는 보편
성을 강조해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재미있어 하면 남들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고 보통 사람들의 보통 얘기를 쓰기 때문일 것'이라는 나
름대로의 분석이다. 그녀는 "소설가가 지식인이나 스승처럼 교훈을 전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문학이 갖는 엄숙성을 혐오한다고 덧붙였다.

● 구체적 묘사…모르는 것은 쓰지 않아.

하지만 보통의 얘기를 쓴다고 해서 모두 인기가 따르진 않는다. 그
녀의 글을 눈에 띄게 하는 것 중 하나는 '구체적으로 쓴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직업이나 옷차림, 대화 내용 하나 하나가 너무 구체적이라
독자들은 '어머, 세상에'하며 혀를 내두르게 된다. 독자들은 글만 읽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예를 들어 안경 한개도 이탈리아제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을 등장
시켜 나름대로 의미를 집어넣는다. 그녀의 소설에 들어간 인물은 담배
를 피워도 '말보로를 폈다가 마일드세븐으로 바뀐 뒤 또다시 말보로'
식으로 피운다.

소설 '아내의 상자'에서 교외 카페에 모인 중년 여성들의 대화 내용
을 인용한 부분도 구체적이다. '휴대 전화로 집에 전화를 해서 숙제 안
한다고 아이들을 야단치고,∼아무개 교수의 교양 강좌가 좋더라, 듣고
울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그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은
아예 쓰질 않는다. 등장인물로 잡지사 여기자, 목수, 출판사 직원을 쓴
것도 "직접 해봤거나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어서』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쓰려다보니 사전 취재 작업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상물
에서 받는 이미지나 특징은 그때마다 메모해두고, 주윗 사람들의 얘기
하나도 지나치지 않는다. 인물이나 사물에 대해 관찰한 이미지들은 모
여서 일정 형태를 갖췄다 싶으면 소설 속 무대로 내보내진다. '열정에
겨워 마구 써댄다'는 은씨의 설명과는 달리 그녀의 소설 곳곳엔 계획된
'연출'이 숨어있다.

'죽은 닭들이 벌거벗은 채 수북히 쌓여있는 한 옆에는 살아있는 닭
들이 목에 줄을 매고 뒤뚱거렸으며∼ 옷걸이에 걸쳐진 아기옷들이 귀후
비개와 손톱깎이 쪽을 손짓하며'. '그녀의 세번째 남자'란 소설에서 시
골난전을 묘사한 부분으로, 어릴 적 시골에서 직접 봤거나 TV 속에 나
온 인상들을 모아뒀다 쓴 것이다.

'흔들면 물방울이 손등 위에 튀어와 박힐 것 같은 푸른 물방울 무늬
모자'란 표현도 그냥 생각난 대로 쓴 게 아니다. 메모의 결과였다. 이
미지 시대를 사는 독자들은 이런 글에 끌려들어가게 된다. 은씨의 의도
였을까, 우연이었을까.

독자들을 강하게 흡입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녀가 즐겨쓰는 관찰자
적 관점이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그녀의 '관찰자'는 상대방의 미세한
감정변화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시치미를 뚝 떼고 능청스러울 정도로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은희경 소설은 징그러울 정도'란
말까지 나온다. 어느새 이런 글쓰기는 '은희경 소설'의 한 특징이 돼버
렸다. 독자는 독자대로 작중 관찰자와 함께 무언가를 훔쳐보고, 때론
들켜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가지면서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은 관찰자적 글쓰기의 극치를 보여줬다. 주인
공은 진희라는 12세 소녀로, 주변 사람들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면서 세
상사의 이면을 엿보길 즐긴다. 은씨는 소녀의 입과 눈을 빌어 인간의
허위의식을 들춰냈다.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30대 불임 여성을 다룬 이
번 이상문학상 수상작 '아내의 상자'에서도 시점이 돋보였다. 문학평론
가 이어령씨는 심사평에서 '객관적인 싸늘한 관찰자도, 반대로 주관적
인 뜨거운 몰입도 아닌 바로 남편의 시점'이었다며 이 부분을 높이 평
했다.

● 소설 곳곳에 `계획된 연출' 숨어있어.

"어릴 적부터 이쪽 저쪽에서 관찰해보고 생각하길 좋아했어요." 자
신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처럼 말했지만 그녀에겐 이렇게 쓰게된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고민이다.

"실제의 제 모습과 남들 앞에 선 제 모습은 늘 뭔가 달랐어요. 기질
적으로 난폭하고 열정적인 구석이 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모범생인 양 살아왔던 것이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하지
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 것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
터 그녀는 인간의 드러난 모습과 무대 뒤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결국은 그런 모습들을 글로 써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자
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무대 뒤 모습을 꼬집어주는 그녀의 글
에 독자들은 점점 빨려들어갔던 것이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제 일기장을 돌려보는 걸 알았어요. 그 때부
턴 남이 볼 것을 염두에 둔 꾸며낸 얘기들을 일기에 썼죠.』 이 읽혀지
기위한 일기쓰기가 그녀의 첫 소설쓰기가 됐는지도 모른다.

은씨를 만나본 사람들은 다소 놀란다. 소설 속 인물들이 주로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인데, 정작 그녀는 상상했던 것 만큼 냉소적이거나
허무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과 타협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소심해 보이기도 하고….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은씨 스스로는 자신
에 대해 '내 속에는 참 내가 많다'는 말을 하곤한다. 보여지는 나, 보
여지고 싶은 나, 실제의 나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그녀는 "지금껏 관찰해본 바로 저는…"이라며 자신의 얘기를 남 얘
기하듯했다. 관찰자적 글쓰기 버릇이 나오는 듯했다. 이제껏 인생은 말
그대로 모범생 인생이었다. 전주여고, 숙명여대 국문과,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할 때까지 정해진 길대로 걸었지 궤도 이탈은 꿈도 못 꿨
다. 고등학교, 출판사, 잡지사, 이벤트 회사 등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
긴 했지만 "정해진 틀 안의 생활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도착한 길이 소설 쓰기였다. 마냥 좋았다. 고민했던 얘기,
하고 싶은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어 좋았고, 출판 기획 경험이
있어 '읽히는' 책이 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어 또 좋았는
지 모른다.

수상 소감에서도 『거울 속의 상이 아닌 진짜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는 모르겠다』고 말했던 그녀는 인터뷰 끝날 쯤이 돼서야 처음에 인터
뷰 요청을 거절했던 이유를 조심스레 말했다. "취재에 응하면 기자가
원하는 대로 또 연극을 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고. '보여지는 나'에 대
한 고민은 '작가 은희경'으로는 물론, 현실 속의 '인간 은희경'으로서
도 계속되고 있었다. (황성혜 주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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