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금융 패전'을 잉태한 일본식 관-민 금융유착 구조의 거대한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유착의 연결고리는 접대이다. 대장성 전직 및 비
고시 출신 관리에서 시작된 접대비리 파문은 고시출신 엘리트 관리와 일
본은행 간부의 구속으로 비화되면서, 광범하게 뿌리내려 있는 부패구조
의 흉측한 몰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일본 관청가와 일본은행 안에서 통용되는 관청용어 중에는 '풍덩'과
'퐁당'이란 은어가 있다. 접대의 강도를 물에 빠졌을 때 나는 소리에 비
유한 것이다. "어젯밤은 '풍덩'이었어∼"라고 말하면 요정 등에서 5만엔
짜리 이상의 고급접대를 받았다는 의미이다. '퐁당'은 1만엔 내외로 가
볍게 저녁만먹는 경우를 지칭한다고 한다.

'접대의 물세례'를 받는 횟수와 강도는 관리의 '능력'과 대체로 비례
한다. 유능한 관리일수록 접대세례를 자주 받고, 받았다 하면 으레 '풍
덩'이다. 거꾸로 접대가 잦을수록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출세도 빠
르다는 속설도 통용되고 있다.

속설대로 검찰에 구속된 대장성 및 일본은행 간부들의 면면을 보면 예
외없이 유능한 인물들이다. 접대수사의 절정을 이룬 대장성 캐리어(고시
출신)관리와 일본은행 간부의 경우 모두 출세가도를 질주하는 엘리트였
고,조직 차원에서 최고간부 후보군으로 경력관리를 받아온 유망주였다.

일본은행에 창립 이래 첫 압수수색이란 치욕을 안겨준 요시자와(42)
증권과장은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 일본은행내 최고 엘리트 코스인 영업
국핵심 포스트를 두루 거쳤으며, "총재는 몰라도 최소한 임원은 보장됐
다"고 평가받아온 동기생중 선두주자였다. 대장성 증권국 사카키바라
(38) 과장보좌 역시 금융의 핵심인 은행-증권관련 코스를 거치면서 '미
래의 증권국장'으로 꼽혀왔다.

금융기관은 이들이 틀어쥐고 있는 정보를 빼내기 위해, 그리고 '재
량행정'의 은혜를 입기 위해 총공세를 폈다. 금융기관의 MOF(대장성) 담
당과 BOJ(일본은행) 담당 직원들은 "10초 먼저 정보를 얻기 위해 1억엔
을 투자한다"는 철학으로 무장하고 엘리트 관리를 술자리며 골프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갖은 지혜를 다 짜냈다.

유능한 관리라면 접대자리를 만드는 데도 남다른 능력이 있어야 한다.
밤 10시쯤 되면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는 하급 관리들에게 '유능
한 상사'의 전화가 걸려온다. 초저녁부터 접대술에 얼큰해진 상사는 "그
만끝내고 이쪽으로 오라"며 호기를 부린다. 비용은 당연히 금융기관의
몫이다. 부하들에게 접대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관리일수록 리더십 있고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언론은 구속된 대장성과 일본은행 간부에 '불운한 사람들'이란 꼬리
표를 붙여주었다. 수사의 표적을 피한 운좋은 대부분의 관리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행운이 계속되기를 빌고 있다. 관청이 규제와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금융의 대장 노릇을 하는 일본식 시스템상, 접대의 부패구조에
서 자유로운 관리란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일본식을 성경 말씀처럼 베껴
온 한국의 금융관청과 중앙은행은 어떤가.(동경=박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