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계 실력자들에 특별보고서 제공하며 처세술 발휘 ##.
지난 대선 직후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직원들에게 이런 요지의 발언
을 했다. "우리는 국가 조직이다. 대선 결과에 조금도 흔들려서는 안되
며 당선자에게 빈틈 없는 예우를 갖추고 충성심을 다할 준비를 해야 한
다."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안기부 '본연의 자세'를 잃지 말라는 당부
였다.
권 전 부장은 스스로 자신의 말에 충실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
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지난해 12월26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를 독
대한 후 정기적으로 국내외 주요 정보를 서면 보고했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 이종찬 위원장을 만나 수백쪽에 달하는 '극비 문건'을 내놓으며
업무 보고를 했다.
그로서는 권좌에서 내려서는 아쉬움과 함께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기밀을 넘겨주는 홀가분함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안기부 청사를 나서는 순간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신
세가 돼버렸다. 현재 안기부를 몰아치고 있는 '북풍 수사'의 칼날이 언
제 그를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수사의 칼날은 그의 바로 아래
차장선까지 겨냥하고 있다. 그가 지난 12월 오익제 편지 사건과 관련해
대책 회의를 주재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그에 대한 책임 추궁이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그가 아직 풀어놓지 않은 'YS 정권의
비밀'이 언제 또 터져나와 그의 발목을 붙잡을지도 알수 없는 노릇이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역대 안기부장 중 최장수 부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의 재임 기간은 모두 3년2개월. 전신인 역대 중앙정보부장을
통틀어도 김형욱(6년3개월 재임)에 이어 2위의 장수 기록이다.
그는 안기부장 발탁시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문민정권 초대
국방부장관으로 하나회 숙청 등 군 개혁을 주도했던 그는 93년 12월 군
수본부 포탄 도입 사기사건으로 '불명예 퇴임'을 했다. 당시 동생 영호
씨가 군납 특혜 의혹에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로 잠시 있던 그는 불과 1년 만에
안기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KBO 총재로 있으면서도 김영삼
대통령과 비밀독대를 하는 특권을 누렸고 끊임없이 재기설을 뿌리고 다
녔다. 초대 국방장관으로 군 개혁을 진두 지휘하며 군부를 확실히 장악
한 그를 최고통수권자가 외면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당시 그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었다. 당시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그의 발탁 배경에 대
해 "대통령의 의중 밖을 빠져나가는 법이 없는 충성심,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화술, 그리고 군을 잘 아는 인사라는 점" 등을 꼽기도 했다.
안기부 직원들 사이에서 그는 처세에 뛰어난 정치적 인물로 평가받
고 있다. 안기부장 재임시절 그는 민주계 실력자들에게 별도의 '특상보
고서'를 제출하는 등 항상 권력 핵심과 끈을 잇는 데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군 시절 자신이 데리고 있던 사람들을 데려다 쓰는 등 안
기부 내에 자신의 인맥을 심는 데 나름대로 주력하기도 했다.
한때 그는 김현철 인맥인 오정소 전 1차장, 김기섭 전 운영차장 등
의 위세에 밀려 '허세 부장'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김
현철씨 청문회가 진행되던 지난 4월 워커힐 빌라에서 김기섭운영차장과
함께 현철씨를 만난 사실이 드러나 결코 권력의 핵심에서 소외된 게 아
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안기부 직원들은 지난 대선 기간 "권 부장이 초기에는 당시 여권 후
보를 확실히 밀었지만 막판에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하기도 한
다. 그는 재임 기간 중 몇번의 해임 위기도 있었지만 탁월한 정치적 감
각과 군부에 대한 장악력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저력을 보였다.
안기부 직원들은 그가 퇴임 후 불행한 길을 걸었던 전임자들의 전철
을 밟는다면 아마 그의 재임시 '정치 곡예'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
다.국가 안위를 책임지는 정보기관의 장이라기 보다 권력자의 오른팔을
자처했던 그의 이러한 정치 지향성이 부메랑이 돼 날아올지 모른다는것
이다.
사실 이러한 권영해 전 부장의 처신은 최고통수권자의 지시를 받는
권력 2인자로서의 한계일지 모른다. 김영삼 정권은 초창기 안기부의 정
치 사찰 금지 등 개혁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결국 정권 유지를 위해 안
기부를 '사병화'했다. 이번 '북풍 공작'에서 보듯 안기부는 김영삼정권
아래서도 '정권 재창출'이라는 최고통수권자의 주문이나 정치권의 입김
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권력의 사용화는 결국 역대 안기부
장들의 비극을 낳는 씨앗이 됐던 게 그간의 현실이었다.
요즘 안기부 직원들은 "안기부장직이 본래 바람을 타는 자리지만 이
제는 퇴임 후 고초를 치르는 전임 부장을 그만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바람은 어쩌면 이종찬 신임 안기부장을 향한 것일 수도 있
다.이종찬 안기부장으로서는 안기부 숙청과 개혁을 지휘하는 것보다 최
고권력자와 자신과의 위상 정립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제일지도 모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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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안기부장들
절반이 퇴임 후 옥고 등 고초 치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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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장직을 거쳐간 사람은 안기부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장직을 포
함하면 모두 22명. 초대 김종필 중정부장(61.6∼63.1)부터 유학성 부장
(80.7∼80.12)까지 12명이 중정부장을 거쳐갔고, 초대 유학성부장(81.1
∼82.6)부터 권영해 부장(94.12∼98.3)까지 모두 11명이 안기부장직에
있었다. 유학성씨의 경우 마지막 중정부장과 초대 안기부장을 겸임했다.
12명의 중정부장 중 이희성(79.10∼79.12) 전두환(80.4∼80.7)씨는
서리 직함이었고, 이들 사이에 윤익균(79.12∼80.4)씨가 직무대리로 있
었다.
전직 중정부장 안기부장 22명 중 퇴임 후 별탈 없이 지낸 사람은 절
반에 불과하다. 중정부장중 김재규는 사형당했으며 김형욱은 납치후 살
해된 것이 확실시된다. 또 김종필 김계원 이후락 이희성 전두환씨는 퇴
임후 정치적 격랑 속에서 구속 또는 구금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역대 안기부장 중 퇴임 후 옥고를 치른 사람은 모두 3명. 유학성 장
세동 이현우씨 등이다. 이중 12.12 5.18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유학성
씨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은 모두 최고권력자의 '가신'으로서 충성을
다한 끝에 퇴임 후 불행을 당했다. 또 전임 안기부장이었던 안무혁씨는
전두환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곤욕을 치렀다. 모두 중정부장이
나 안기부장 재임시의 사안으로 불상사를 치른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22
명중 절반이 퇴임 후 불행을 겪은 셈이다.
퇴임 후 불행해진 역대 안기부장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최고통수권
자와 지나치게 유착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공직 재임시에는 권력의
척도였던 이같은 유착관계가 퇴임 후에는 오히려 재앙을 불러왔던 것이
다. (정장열 주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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