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정부 과제는 `구조개혁'…재벌개혁 시도 정보흘러 좌절" ##.
김영삼 정부의 개혁은 실패했나.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나. 당시의
경험이 오늘의 '선생'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없나. 김영삼 전 대통령
의 정책기획수석과 사회복지수석을 지냈고 '김영삼 개혁의 이론가'로
불려진 박세일 전수석을 지난 3월1일 서울 반포동 한 찻집에서 만났
다.
--수석 재임 기간 동안 의욕적인 개혁 작업을 추진했는데 기본 정
신은 무엇이었습니까.
"'세계화'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94년 말 불러서 '국정을 2년
가까이 하다보니 일상에 매이게 된다. 20∼30년 앞으로 가서 돌이켜
볼 때 반드시 했어야 할 개혁 과제들을 준비해달라'고 하셔서 시작한
것이 세계화였습니다. 세계화는 YS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시대의 프로
젝트였습니다. 92∼93년 1년간 미 컬럼비아대에서 연구를 했는데 당
시 '세계화'라는 화두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가 목적이었습니다. 세
계는 지금 개혁 경쟁의 시대입니다.그리고 그 방향은 열린 경쟁의 시
대에 맞추는 것입니다. 이걸 하지 않으면 국가경쟁력에 치명적 결함
이 생긴다고 봤습니다. 사법 개혁, 노동 개혁 등이 그런 생각에서 나
온 것이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대대적인 재벌 개혁도 준비했
었습니다. 당시 준비했던 관련 자료들은 새 청와대 비서진에 모두 넘
겼습니다.".
--재벌 개혁이라면.
"열린 경쟁의 시대에 재벌의 지배구조를 그대로 두면 안된다고 생
각했습니다. 당시 제가 조직했던 세계화추진위원회 내에 소위를 두고
강봉균 당시 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삼일회
계법인 김일섭 부회장 등이 팀을 이뤄 개혁안을 만들었습니다. IMF의
힘을 빌려 지금 하고 있는 정책들이 당시 거의 다뤄졌습니다. 그런데
95년중반 그중 일부가 새어나가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로
비가 강력해졌고 저희들을 사상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습니다.
재경원에서도 이상론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고, 당시 어
떤 신문은 사설을 통해 '정신나간 세추위'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결국
96년가서 제가 사회복지수석으로 자리를 바꾼 뒤 김인호 당시 공정거
래위원장, 구본영 경제수석, 이각범 정책기획수석 등이 협조해 진일
보가 있었지만 많이 약화되어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불
과 2년도 안돼 IMF를 불러들인 것 아닙니까.".
● "청와대는 대통령 분신들의 집단이어야".
--각종 개혁 정책들이 좌절과 실패로 끝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
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전에 제가 생각했던 역사의 틀을 얘기해야겠습니다. 해방후
15년은 건국(Nation Building)의 시기였습니다. 그후 30년은 군부·
개발독재 세력의 산업화·근대화 시대였습니다. 그 다음 10년, 다시
말해 90년대는 민주투사의 시대입니다. 산업화시대에 맞는 국가 틀을
세계화시대에 맞게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는 개혁의 시대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3김시대가 끝나고 그야말로 국가경영형 전문가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 10년 중 전반기를 YS가, 후반기를 DJ가 하게 됐습니
다. 둘은 한 단위입니다. YS는 군 사조직 혁파, 공직자 재산 공개,지
방선거 전면 실시, 대선의 공정관리 등을 했습니다. 사실 지금 쿠데
타를 할 수 있습니까, 돈 선거를 할 수 있습니까. DJ는 구조 개혁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DJ는 IMF의 힘을 빌려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DJ는 의회·정당·선거제도의 개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통해
국가의 기틀을 바꾸고 국가경영형 인력을 키워 21세기에 대비해야 합
니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한계는 없었습니까.
"이익집단의 집착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습니다. 기득권은 단순히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가름이 아닙니다. 기득권은 사고입니다. 공공
이익을 위해 사적 손해를 감수하지 않는 것, 그게 기득권 세력입니다.
안주하는 사람, 개혁을 외치다가도 정작 자신의 문제가 되면 저항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법조계, 의료계 등은 굉장한 이익집단입니
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별별 루머가 다 돌았습니다. 사법 개혁을 할
때 내가 사법고시에 6번 떨어져서 한풀이하려 한다는 해괴한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저는 시험 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96년 정치 개혁 입
법을 할 때 선거구제도도 바꾸려고 몇차례 시도하다 안됐습니다. 국회
의 호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잘못 했다고 생각되거나 아쉬운 대목은 없습니까.
"얼마 전 미국 LA타임스 기자가 와서 물어보기에 세 가지를 얘기했
습니다.
첫째 개혁 세력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걸 못했습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자기 정치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이걸 보완
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개혁적 세력을 구축해야 합니다. 공무원중
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파격 발탁해서 써야 합니
다. 정치인 중에도 주요 포스트엔 이런 사람들을 앉혀 새로운 세력이
선거를 통해 구축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언론·학계도 마찬가지입
니다.
둘째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새마을운동 같은 국민
운동이 필요한 데 그걸 못했습니다. 그게 우리 정서와 수준에 맞다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옳은 일을 해도 언론과 국민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우리 언론은 너무 비전문적·감성적이고 무책임합니다. 세추위를 만들
면서 세계화추진국민운동본부도 함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걸 못했습
니다.
셋째는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개혁의 산실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국정의 모든 혼란
은 청와대 내부의 이견에서 비롯된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내각은 지
역 안배·성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지만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의 분신들이 모인 집단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혁은 크든, 작
든 자기를 던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5년 동안 혼신을
다해 일하고 그 뒤에는 입산하겠다는 자세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사법개혁은 누가 하든 시간 문제".
--외부 평가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보람과 좌절, 그리고 개인적인 상처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과제는 뻔합니다. 교육개혁은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강봉균 수석
과 얘기가 됐고, 정치개혁·사법개혁도 누가 하든 시간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강봉균 수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혁지향적·합리적 관료라고 생각합니다. '하려다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해보십시오'라고 이번에 얘기했습니다.".
--노동법 입법화 과정에서 당시 이석채 경제수석과 갈등관계가 깊
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고의 차이에서 (갈등이) 비
롯됐습니다. 세계화시대의 사고냐, 산업화시대의 사고냐의 차이였다고
봅니다. 이석채 수석은 노를 누르고 사를 키워야 자본 축적이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저는 민노총을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고 전교조
문제도 풀어야 구조 개혁이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사법개혁 때는 윤관 대법원장이 사표까지 냈고, 김영수 당시 민
정수석도 강하게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윤 대법원장이 사표를
내는 바람에) 대통령에 너무 부담이 될까봐 결국 (사법개혁을) 포기한
측면이 있습니다. 김 수석도 법조계 사람들 입장을 전달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것입니다.".
--깜짝쇼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만.
"불가피한 부분이 있습니다. 공론화라는 게 말은 좋지만 그러다보
면 이익집단들의 끊임없는 로비에 의해 본질이 훼손되는 게 현실입니
다. 사법개혁도 그랬고, 이번 DJ의 행정개혁도 공론화 과정이 너무 길
다보니 제대로 안된 것 아닙니까. 전문가들이 숙고해서 입안한 뒤 공
론화과정은 가급적 짧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영삼 정부의 개혁 작업이 후일 재평가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시간이 좀더 필요하겠지요. 일단 IMF가 지나가야지요.".
그는 청와대 수석 재임 기간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회한이 너무 많다고 했다. 대화 도중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
다. 불교신자인 그는 3월2일 서울을 떠나 부석사 백담사 송광사 범어
사 등을 거쳐 한 달뒤쯤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면 재임
기간동안 있었던 일을 역사에 남기고 싶다고 했다.(신정록-최유식 주간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