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고비에 취임하게 되니 걱정이 크다. 나라 일이 좀더 순조
울 때 취임했더라면 국민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었을텐데….".
역경과 시련을 겪으며 네번의 도전 끝에 청와대에 입성한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 첫날인 25일,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오전 9시
부인 이희호여사와 함께 첫 출근해 본관 2층 집무실 책상에 앉은뒤 털
어놓은 감회였다. 그는 그러면서도 경제난 극복의 자신감도 피력하는
등 비교적 길게 다음과 같은 소감을 말했다.
"담담하다.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방송에서 국민들이 경제를 살려
달라, 물가를 잡아달라, 실업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
다. 모두가 당면한 절실한 문제다. 그러나 금년 1년은 고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국민에게 어떻게 희망을 주고 안도감을 주면서 끌고갈
것인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지난 2개월동안의 경험을 살려보면 나
라일과 경제를 어떻게 새로이 국내외에 자리매김하고 내년 중반이후부
터 국민이 한시름 놓도록 만들까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이 섰다. 앞으
로 국민과 함께 노력하면서 물가안정, 외채상환, 실업문제 해결, 수출
증대 등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쓰겠다." 무엇보다도 경제난 해소
에 따른 책임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듯한 눈치였다.
영광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때로는 시련도 극복해야 하는 권
력정상의 자리. 김대통령은 이날 영광의 기쁨부터 맛보기 시작했다.오
전 9시20분 집무실 옆 접견실에는 심우영 총무처장관이 첫 손님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심장관은 김 대통령과 부인 이 여사에게 국가원수와
부인에게 국가 최고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증정했다.
김대통령은 다시 자리를 집무실로 옮겨 김중권 비서실장과 박지원
공보수석이 배석한 가운데 국무총리와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재가했다. 대통령으로서는 첫 공식적인 권한행사였다. 그는 심장관이
갖고온 서류를 한동안 검토한뒤 대통령 사인란에 한글로 '김대중'이라
고 썼다. 김대통령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전 9시 45분 취임식장인
국회의사당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에게는 첫날부터 시련도 다가왔다. 사인한 국무총리동
의안이 이날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것 같은 기류가 전해지면서 청와
대는 기쁨과 함께 우울함도 느껴야 했다. 김대통령은 이미 일산자택에
서 청와대로 출발하기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박 공보수
석은 전했다. 오후 들어 한나라당이 불참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박수석은 '중대 사태'라며 차관부터 임명하는 방안을 거론하기 시작했
다.
취임식장에서 청와대로 돌아온 김대통령은 당초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함께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첫 식사를 비서들과 할 경
우 '비서정치'를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취소하고 부인 이여사와
만 식사를 했다고 한다.
김대통령은 대신 오후 3시 15분부터 김 비서실장과 안주섭 경호실
장을 비롯한 전수석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그 자리에 부인
들도 배석시켰다. 김대통령은 임명장을 준뒤 인사말을 통해 "여러분들
은 대통령의 귀와 눈이 돼야 하고 때로는 머리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
했다. 그는 이어 "따라서 항상 마음이 안정되고 건전한 상식을 가져야
하며 여러가지 사물을 균형있게 판단하고 청렴결백하고 일에 성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서는 아내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 부인
도 그런 협력을통해 보람을 찾고 남편과 더불어 나라에 봉사하는 성공
적인 동반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홍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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