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정부 감사원장에 지명된 한승헌(64)변호사는 인권변호로 널

리 알려진 재야법조인이다. 그의 법조 첫 출발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후에 평생을 상대해야 했던 '검사'였다. 57년 고시8회에 합격한 한 변호

사는 5년여간 검사로 활동했다. 짧지만 서울지검 공안부도 거쳤다.

65년 지방발령을 계기로 검사직을 그만 둔 한 변호사는 76년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그해 3월 1일 서울 명동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
어졌다. 이른바 '3·1 명동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도자는 김대중 전 대
통령 후보.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김당선자와 인연을
맺는다. 이미 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을 거쳐 75년엔 유신을 비판하
는 '어느 조사'라는 글로 투옥까지 경험한 그였다. 한변호사는 5·17 당
시 김당선자와 함께 투옥돼야 했다.

이같은 경력은 그의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수 밖에 없다. 정
치 사회적 사안에 대한 그의 입장은 대부분 진보적이었다. 한 변호사는
원자력발전과 같은 국가기본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 섰고, 이런 자
신의 진보적 주장을 언론에 왕성하게 기고했다. 그는 밀입북했던 작가
황석영씨의 석방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 변호사의 이같은 가치관은 타협할 줄 모르는 그의 선비적 성격과
합쳐질 경우 '편향성'을 띨 수도 있는 개연성을 갖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균형과 합리'가 한 변호사의 본모습
이라고 말한다.

한 변호사는 '정치'에 대해선 흥미가 없었던 듯한 이력을 갖고 있
다. 그는 95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회의로부터 전북지사 출마를 권유받는
등 정치권 진출을 부단히 종용받았으나 모두 물리쳤다.

그런 그가 김대중 당선자 정부에서는 흔쾌히 감사원장 자리를 수락
했다.

감사원은 정부 회계검사가 본래의 임무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이후
감사원의 업무영역은 사정의 한 장치로까지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한 변
호사가 평소 그가 가진 소신대로, 타협함이 없이 감사원을 이끌어갈경우
감사원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큰 변신을 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외
환특감 의지를 보인 그의 일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 변호사는 내년 9월이면 감사원장 정년. 김당선자는 그럼에도 그
를 감사원장으로 지명했을 정도로 신임이 두텁다. 68년부터 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의 시분과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권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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