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열하성 ##.

일본육사 본과 57기 졸업식은 1944년 4월20일 가나가와현자마의 교정

에서 있었다. '대원수'로 불리기도 했던 히로히토 천황을 비롯하여 도조

육상, 스기야마 원수 등 군수뇌부 인사들이 참석했다. 박정희가 속한 유

학생대 생도들도 함께 졸업했다. 이날 행사를 전한 신문기사를 보면 정

규생도들 가운데 15명이 우등상을 받았다. 유학생대 생도들에 대한 시상

식은 따로 있었는데 수상자의 명단은 실리지 않았다. 동기생들은 이 유

학생대에서 박정희가 3등으로 졸업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본육사를 졸업한 박정희는 3백명이 넘는 동기생들과 함께 만주로 돌
아왔다. 2백40명의 일계졸업생들은 만주군으로 편입되어 이 허수아비 군
대를 실질적으로 지휘하게 되었다. 만주로 돌아오는 길에 중국인 생도
두사람이 장개석군대로 달아나버렸다. 졸업생들은 여러 부대에 분산 배
치되어 두 달간 견습사관 훈련을 받았다. 박정희와 이섭준은 소련-만주
국경지대의 관동군 부대에 배속되었다. 이섭준의 기억에 따르면 이 부대
에서 두 사람은 탈영한 만계 동기생 때문에 혹독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
다. 모래주머니를 지고 8㎞를 달리는 벌을 받기도 했다. 견습이 끝난 다
음에 2기 졸업생들은 다시 신경의 군관학교 교정에 집합하여 2주간의 교
육을 받았다. 만주국의 사정을 설명해주는 강의가 주였다. 마지막 날에
송별회가 있었다. 일본육사에서 침대친구였던 노무라가 보니 박정희는
술을 마구 마셔대는 것이었다. 늘 조용하고 과묵하던 박정희는 잔뜩 취
한 채 노무라에게 다가왔다. 박정희는 친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는 울부짖듯이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하고 말 거야. 반드시 해내고 말 거야".

노무라는 1961년 텔레비전을 통해서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지휘하
여 정권을 탈취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순간 박정희의 "반드시 해내고
말 거야"란 울부짖음이 생각났다. 노무라는 "너는 기어히 해내고야 말았
구나"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박정희는 1944년 7월 열하성 흥륭현 반벽산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 제
8단으로 배속되었다. 단은 연대규모의 부대를 가리켰다. 반벽산은 만리
장성의 바로 북쪽 산악지대에 있었다. 반벽산에서 북쪽으로 40㎞쯤 가면
청조의 이궁이 있는 승덕, 북서쪽으로 가면 몽골이었다. 모택동(모택동)
의 팔로군 제17단이 만군 8단의 주적이었다. 8단의 당제영 단장은 중국
인이었다. 상교(대령)인 그는 박정희를 부관 겸 기수로 임명했다. 부관
이하는 일은 작전참모의 보좌였다. 머리 좋은 장교가 맡는 자리였다. 박
정희로서 반가웠던 일은 이 8단에 만주군관 1기 출신 조선인 장교 두 사
람이 먼저 와서 근무중이란 점이었다. 박정희에게 난생 처음인 군대주먹
맛을 보여주었던 방원철은 중화기 중대(연이라 불렀다)의 선임장교였다.
이주일(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감사원장 역임)은 대대 부관장교였다.

보병8단은 1944년 1월에 조선인들이 많이 살던 목단강 영안에서 열하
성으로 이동한 부대였다. 그때는 장백산 밀림 지대에서 활동중이던 중국-
조선 공산계열의 항일빨치산 부대가 소련으로 밀려난 뒤였으므로 8단은
작전지역을 바꾼 것이었다. 이주일, 방원철 두 조선인 장교도 이동하는
8단을 따라왔다. 만주와 중국의 접경지대를 관할하게 된 이 부대는 팔로
군의 공격으로부터 촌락들을 방어하는 것이 임무였다. 만주국의 용병처
럼되어 중국공산군과 싸우게 된 박정희로서는 신바람이 날 수 없는 임무
였다.

방원철은 자신의 회고록(미발표)에서 이때의 진중생활을 자세히 기록
하여 놓았다. 이 기록은 박정희가 처했던 상황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방원철이 소속된 중대의 대장은 일본인 장교 오노키 상위(대
위)였다. 방원철은 조선인으로서 일본인의 명령을 받아서 중국인 군인들
을 지휘하여 또 다른 중국인을 공격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곤혹스러웠
다. 더구나 팔로군은 인민들 가운데 숨어 있고 전선이 뚜렷하게 형성되
지않아 사관학교에서 배운 군사학을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었다. 방원철
은한 경험을 통해서 현지 중국인들의 민심을 얻는 것이 가장 안전한보신
책임을 알게 되었다. 8단 소속 6중대의 중국인 중대장이 당천이란 마을
에 주둔하면서 민폐를 많이 끼쳤다.

이 중대장은 한 과부 집에 놀러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팔로군 공작원
에게 피살당하였다. 단본부에서는 6중대 병력을 물리고 방원철 중위로
하여금 1개 소대를 끌고가 당천에 주둔하라고 명령했다. 주민들은 새 부
대가 들어오자 겁을 먹고 있었다. 방원철은 마을의 유지들을 모이게 하
고는 이렇게 말했다.

"일전에 있었던 중대장 피살 사건과 이 마을 주민들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 부대원들이 행패를 부리면 저한테 알려주
십시오. 부대원들의 가슴에 번호표를 붙이도록 지시했습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번호를 알려주십시오. 번호를 붙이지 않는 자가 약
탈을 하면 때려죽여도 좋습니다. 마을에서 공출하는 땔감과 식품에 대해
서는 월2회씩 그 대금을 지불하겠습니다.".

방중위는 출입증을 유지들에게 주어서 부대로 놀러오도록 했고 자신
도 마을에 놀러가서 마작도 하고 아편도 빨았다. 노인들이 가르쳐주는
요령대로 아편을 빨았더니 중독도 되지 않고 금단현상도 없어 오히려 건
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루는 중국인들과 마작을 하다가 불
쑥 이렇게 떠보았다.

"내가 여기 놀러나오는 것을 팔로군이 알고 있을텐데 왜 안 잡아가는
지 모르겠어.".

"부대장님은 안심하십시오. 팔로군이 잡으러 오면 우리가 막겠습니
다.".

그때부터 방 중위는 마을사람들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안심하게
되었다. 하루는 일본인 중대장 오노키가 저녁을 먹다가 호주머니에서 엽
서를 꺼내더니 방중위에게 보여주었다. 일본에 살고 있는 그의 여동생이
보낸 것이었다. 요지는 '오빠, 만주에는 쌀이 많다는데 다음에 고향에
오실 때는 좀 가져오세요. 쌀밥이 먹고싶어요'였다. 오노키는 "이 정도
면 전쟁은 다 끝난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글쎄요, 그것 참 심각한데요."
"우리도 적당히 하면 돼.".

(조갑제 출판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