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로 인수·합병 늘어 교포 2·3세들 기업서 주가 상승 ##.

지난 2월13일 김포공항. 홍콩발 비행기에서 모 미국계 투자 은행의
직원이 내렸다. 그는 비자 국적란에 '미국'이라고 썼다. 하지만 까만 머
리, 까만 눈의 영락없는 한국인 모습이다. 그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약속
장소로 직행했다. 그는 "회사 원칙상 인터뷰는 절대 응할 수 없다"고 말
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투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왔음을 내비쳤다. 숙
소나 스케줄은 극비 사항이라고 한다. 그는 IMF 한파 이후 한국행 발길
이 잦아진 교포 2세 비즈니스맨 중 하나이다.

IMF 한파로 어깨가 움츠려든 요즘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동이 늘어
난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한·미 양국 기업에 포진해 있는 '코메리칸'들
이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거나 아예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 교
포 2∼3세들이 IMF 시대 한· 미 비즈니스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활동하는 무대는 외국계 투자 은행이나 국내 로펌, 컨설
팅 회사 등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국내외 기업간 인수·합병이나 기업
신용평가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들 역할은 날로 커가고 있다.

이들에겐 영어와 한국어의 자유로운 구사와 양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
없는 무기가 된다. 이들에게 이제 기회의 땅은 미국이 아닌 한국이다.

한국에서 활약하는 코메리컨들은 주로 90년대 들어왔다. '세계화 바
람'을 타고 외국 기업체와 함께 들어왔거나 한국 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교포 출신을 영입하면서 채용된 이들이다. 최근 들어서는 한·미 양국을
수시로 오가는 교포 비즈니스맨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외국 기업
에서 파견돼 스파이처럼 정보를 모아가거나 관광객처럼 한국을 찾아 현
장 분위기를 보고하는 일을 한다.

이들에게 국적은 나중 문제다. 소속 업체가 외국계일 때는 물론 국내
회사에서 일하더라도 주거래 고객(클라이언트·Client)이 외국 기업이면
그 나라 입장이 된다. 이같은 프로 정신은 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몫한다.

이들이 애초에 능력을 인정받던 부분은 탄탄한 영어 실력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등장하는 전문 법률·경제 용어나 미국인들만의 독특한 표현도
알아듣고 말 속의 뉘앙스를 통해 상대방 마음을 읽어낼 정도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단순한 영어 실력만으론 부족하다. 미국인은 물
론 한국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스타일까지 꿰뚫고 있어야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는 재미교포 변호사 이상구
(33)씨는 회사에서 좀더 대접받는 이유에 대해 "양국 사람들의 협상 스
타일을 모두 알고 일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미국
인은 성사시키고 싶은 계약 조건을 처음부터 확실히 내거는 반면 한국인
은 스스로 만든 타협안 수준에서 거래에 들어간다는 것. 때문에 그는 담
당고객이 미국 기업일 땐 "가능하면 부드럽게 하라"고 하고 국내 기업일
땐 "좀더 정확하고 공격적으로 나가라"고 충고한다.

6살 때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하버드대 동아시아학, 뉴욕 브로클린대
법학을 전공한 뒤 시카고대 로스쿨을 마쳤다. 89년 한국에서 로펌의 인
턴십 과정에 참여했다가 한국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미국 뉴욕주 변호
사회' 소속이라 국내에선 법정 소송 등에 직접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일이 늘어났다. 한국을 상대로 거래하던 외국 펀드매니
저들이 한국 사정을 알면서 의사 소통이 잘되는 그를 우선 찾기 때문이
다. 최근 그는 M&A 관련 영문 의견서 작성 외에도 "혹시 회사를 팔려고
하는 한국 기업들은 없느냐"는 문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
다.

스위스계 투자 은행인 CSFB사의 법률고문 김진(36)씨는 외국 회사의
법률고문으로 일하는 교포 변호사. 그는 소속 회사가 한국을 상대로 거
래할 때 부딪히게 되는 정부 규제 법안 문제를 맡고 있다. 날마다 바뀌
는 한국 정부의 규제 법안을 '골칫거리'로 여기는 외국 금융 회사들이
채용한 해결사인 셈이다. 그는 경력 또한 화려하다. 하버드대 경제학을
마친 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로스쿨과 MBA 과정을 마친 법학·경제
통이다. 게다가 94년 국내에 들어와선 김&장 법률사무소에서도 근무한
국내 현장 경험도 있다.

외국 기업체 지점장으로 나와 있는 이들도 있다. 전세계 기업신용평
가등급을 매기는 D&B (Dun&Bradstreet) 한국 지사장 김승환(33)씨. 그는
세계 기업체들 사이에서 업체 신용도에 관한 정보를 파는 중개상이다.

그 역시 최근 들어 눈코뜰 새 없이 바빠진 것은 물론이다. 그는 "이제
혈연 학연 운운하던 때는 지났다"며 "한국이 신용 사회에 접어들면서 그
덕을 보는 것 같다"고 웃었다.

이름의 약자인 'S.H Kim'으로 불리는 그는 어린 시절 외교관인 아버
지를 따라 인도 멕시코 일본 미국 등지를 돌아다녔다. 남가주대학에서
로스쿨과 MBA 과정을 마친 뒤 D&B 뉴욕 본점에서 일했다. 초대 한국지점
장으로 온 것이 95년 9월. 한국 기업과 상대하는 데 이질감이 덜한 그를
내세운 회사 전략도 있었지만 "교포로 미국 사회에서 주류에 들려면 미
국인이 따라오기 힘든 한국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그 나름의 생각도
작용한 결과였다.

최근 아시아 경제 위기 때문에 D&B를 통해 상대방 기업체들의 신용도
를 조회하는 건수가 하루 2백건이 훨씬 넘는다. 하지만 조회 건수 중 60%
이상은 외국 기업의 한국 기업 조회라고 한다. 미국 회사 소속이지만 그
는 이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 나라의 신용등급만 따
지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정보 마인드를 키워 자신
의 일이 회사뿐 아니라 한국에도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 회사에서 근무하는 교포 기업인은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꿰뚫
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
는 사람 아니면 자료 협조도 제대로 안되는 한국 상황을 읽고 미국인들
보다 앞서는 정보를 챙기는 경우도 많다. 홍콩계 클레리언증권 한국 지
점의 데이비드김(27). 그는 미국 텍사스주 출생에 나이도 많은 편이 아
니다. 한국어도 아직 서툴고 겉모습도 언뜻 보면 홍콩 사람같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서 일하려면 인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 지는
이미 오래다. 그가 맡은 부분은 화학, 정유 부분. 이 관련 시장을 분석
해 주식 투자 가능성에 대한 리포트를 본국에 내는 일이다. 때문에 홍콩
투자자들은 물론 관련 분야 국내 기업체 사람들을 상대할 일이 많다. 그
는 서울에서 화공학을 전공한 아버지 친구들이 이 분야에 많아 "운이 참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작은 일이더라도 누구를 통하다보면 큰 도
움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IMF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에선 '이방인'이었다. "상황은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만 보면 신나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주
식시세가 떨어지지만 한국 시장에 대한 자문과 관심은 오히려 꾸준히 늘
고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월급도 원화를 기준으로 해 본점에 있는 동료
에 비해 사실상 절반을 받는 셈이지만 "한국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다"
고 말한다.

과거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던 코메리칸들이 IMF
시대를 맞아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환영받는 사람들로 위상이 바뀌고 있
다. (황성혜 주간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