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7장 진창을 건너는 법 ⑧ ##.
예전의 영희같으면 그대로 차를 세우고 달려나가 명훈을 얼싸안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받아치기를 시작한 그때의 영희
는 달랐다. 무턱대고 감정의 충동에 따르는 대신 냉정하게 앞뒤를 살
폈다.
(오빠가 왜 여기에 오게 됐을까? 그새 막노동자로 전락하고 만 것
일까?).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일하는 것이 너무도 당당했다. 막일하는
인부 특유의 찌들리고 지친 몸짓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그럼 여기 우리 집을 짓고 있는 걸까?).
그렇게 보기에는 또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곁의 인부들이나 다름
없이 허름한 차림에 방금 들고 있는 건자재도 직접 인부의 하나로 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영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
는 것은 돌내골에서 개간지를 경작하던 명훈이 거기에 집을 짓게될
때까지의 과정이 상상속에서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일이었다.
영희도 가족들이 돌내골을 떠난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의 전전에 대해서는 들은 바도 없거니와 알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도회의 뒷골목 진창에서 흐물흐물 녹아 사라
져버릴 것같은 불안에 빠져들면서, 그래서 살아남기 위한 표독스런
결의를 굳히면서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기로 한 까닭이었다.
"왜 아는 사람입니까? 차 세울까요?".
눈치 빠른 김상무가 그러지 않아도 천천히 몰던 차의 속도를 더욱
떨어뜨리며 물었다. 영희가 줄곧 명훈에게 눈길을 주고 있음을 알아
차린 것같았다.
"아뇨. 그냥 지나가요.".
영희는 그렇게 대답해놓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오빠앞에
나타나도 좋을 때인지 아닌지를. 가슴에 뭉클하는 혈육의 정으로 봐
서는 어찌됐든 오빠를 부여안고 한바탕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하
지만 그녀는 기어이 김상무의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그 골목을 빠져
나왔다.
(오빠가 한 노가다로 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만나는 것은 서로간의
고통을 더할 뿐이다. 나는 아직 오빠를 도울 힘이 없고, 오빠는 부끄
러운 삶의 현장을 내게 들킨 꼴이 된다. 오빠가 어렵게 터를 장만하
고 우리 집을 얽고 있는 중이라도 결과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적어도
오빠가 여유있게 보이지는 않고, 목표하는 수준에 이를 데까지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겠다는 내 결심만 흔들리게 할 것이다. 그냥 지나가
자. 좋은 다음날 옛 말로 돌리기로 하고….).
영희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언젠가 가족들 걱정을 하는
영희에게 미라가 해준 말도 한몫을 했다.
"피니 정이니 하는 것, 때로 우리 앞을 가로막는 질퍽한 진창과도
같은 것이야. 진창을 가장 마뜩하게 건너는 법은 피해가는 것이지.
길을 좀 돌더라도.".
차가 골목을 빠져나와 명훈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영
희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오빠 미안해. 좋은 다음날 꼭 찾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