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저녁 7시30분쯤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실에 이상득 원내총무를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나라당은 운영위원 24명
가운데 14명. 한나라당 의원들이 모두 모이자 국회운영위원장인 이 총
무는 개회를 선언했다.

같은 시각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운영위 소속 의원들은 각각 당 원
내총무실에 모여 국회내 케이블 TV방송을 통해 운영위 진행 상황을 지
켜봤다. 거대 야당이 처음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는 순간이었다.

이상득 위원장이 개회를 알리는 의사봉을 내려치는 순간 카메라 후
레시가 일제히 터졌다. 이 총무는 곧이어 인사청문회 관련 두개 법안을
상정한 후 "이미 충분한 토론이 이뤄졌으므로, 찬반토론과 축조심사는
모두 생략하겠다"고 했다.

"법안 통과에 이의 없습니까?".

한나라당 의원들은 텅 빈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석을 바라보며 "이
의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두개 법안 처리에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이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실시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절
차에 따라 처리했다"며 회의를 끝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서로 "고생
많았다"며 악수를 나눴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거대야당'의 힘을 확인
한듯 "안되는 게 없구만","국회를 무시하면 안돼"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순간 국민회의 총무실에서는 "'여소'로는 안되는구만"이라는 한탄
이 흘러나왔고, 박상천 총무는 "야당이 법안을 단독처리 하는건 처음
본다"며 줄담배를 피웠다.

자민련 분위기도 비슷했다. 이정무 총무는 "과거 민자당과 신한국
당은 야당이 제출한 인사청문회 법안을 '헌법 위반'이라며 거부해왔다"
며"'한나라당은 신한국당이 아니다'며 강행처리하는 데는 할 말이 없
다"고했다.

지난 대선 이후 첫 여-야간 정권교체라는 사실 못지않게 한나라당
이라는 '경험있는 거대 야당'의 출현에도 관심이 모아졌었다. 그런 새
로운 야당의 출현이 우리 의회정치를 한걸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
이란 기대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신여-야가 일합을 겨룬 이번 임시국회를 거치
면서 무너지고 있다. '기선 제압', '세 싸움'의 구태가 그대로 재연되
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국정경험'은 차츰 잊어가면서
과거 소수 야당의 투쟁술을 빠른 속도로 습득하고 있는 것같다.

(김연광·정치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