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박영필 교무처장은 지난달 말 경영학과 졸업반 학생의 전
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전화 내용은 'A학점을 받은 과목의 점수를 F로
해줄 수 없느냐'는 것. 그 학생은 "IMF 때문에 아직 취업도 못했는데
실업자로 사회에 나가느니 일단 학교에 남고 싶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얼마후 이번엔 법학과 졸업반 학생이라며 같은 내용의 전화가 걸려
왔다. 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그는 "학교에 남아 있으면 정보도 얻기
쉽고, 고시에 떨어지더라도 재학생이어야 취업에 유리할 것 같다"고 말
했다.

지난 2주동안 이처럼 연세대 교무처에 '학점포기를 통한 졸업연기'
요청을 해온 학생은 줄잡아 20여명. 이들 대부분은 취업문이 이공계열
보다 상대적으로 좁은 인문-사회계열 학생들로 실업자로 사회에 나가는
게 두려워 '졸업유예'를 선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측의 방침은 그러나 단호하다. 성적을 고친다는 것이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 IMF한파로 인한 학교의 예산 긴축도 이유중 하나다. 20
만원정도면 등록이 가능한 이들 '9학기 4학년'들이 늘어나면 편입생 충
원에 지장을 받는다. 게다가 4학년 등록률이 떨어지고, 입대 및 일반휴
학생들이 늘어나면 학교 재정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박처장은 "학생들의 부탁을 일일이 거절하느라 힘들었다"며 "학생
들이 F학점을 자청하며 졸업을 연기하려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최승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