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헬름2세 방문후 서구세계에 각광 ##.

지금부터 꼭 100년전인 1898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Wilhelm II)
는 역사적인 중동순방에 올랐다. 제일 먼저 예루살렘을 방문한 황제는
다음 목적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향했다. 황제는 지중해에서 배를
타고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황제는 의외의 곳에서 길을 멈추었다. 레바논의 벡카 평야에 있는 '바
알벡'(Baalbek)이었다.

작은 마을에 불과하던 바알벡은 독일 황제의 방문으로 갑자기 로마
시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유적지로 서구 세계의 각광을 받게 되
었다. 빌헬름2세는 바알벡에 로마시대의 엄청난 유적들이 흙 모래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보고 즉시 독일 고고학 발굴단은 보냈다. 바알벡의
발굴과 복원 작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바알벡의 발굴작업이 진행되는 도중 제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결
과는 독일과 오토만 터키 제국의 패망이었다. 레바논의 상황도 크게 달
라졌다. 레바논을 지배하던 오토만 제국의 통치는 끝이 나고 프랑스의
위임 통치가 시작됐다. 자연히 바알벡을 발굴하던 독일 고고학 팀은 철
수하고 프랑스 발굴 팀이 작업을 계속했다.

바알벡은 서기전 2천년 대부터 벡카 평야에 살던 원주민들이 그들의
주신인 바알신을 섬기던 종교적 중심지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곳에 남
아있는 유적들은 1∼3세기 로마제국시대에 건축된 신전들이다. 특히 주
피터 신전은 로마제국내에서 가장 큰 신전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의
흐름속에서 지진 전쟁 등으로 이 신전은 파괴되었고 무너져 내린 돌들
은 다른 건물 건축에 석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오늘날 과거의
웅대했던 주피터 신전은 원래 모습대로 복원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다
행스러운 것은 지난 한세기 동안 독일과 프랑스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
당시 주피터 신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남아있는 유적들과, 고고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주피터 신
전과 신전 구역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신전 경내로 들어가려면 먼저 51
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17개씩 3단으로 되어있는 계단은 그 폭이 50㎝
나 되어 대규모 신전의 위세를 보여준다. 계단을 올라가면 높이가 10m
이상인 석주가 12개 늘어선 주랑 현관이다. 중앙에 있는 아치형 입구를
통해 신전 구역 안으로 들어서면 신전의 전정과 만난다. 정육각형 모양
에 9백평 정도인 전정에는 모두 46개의 석주가 둘러서 있어 사람을 압
도한다.

계속해서 발길을 옮기면 5천평 정도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곳 중앙
에는 주피터 신에게 제물을 바치던 10m이상 높이의 제단이 있다. 이 광
대한 구역을 돌아가며 128개의 석주가 둘러서 있고, 200개가 넘는 신상
들이 도열해 있다. 여기서 다시 30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면 신전구역
안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도달한다. 이 높은 곳에 웅대한 위용을 자랑
하며 주피터 신전이 우뚝 서 있었다. 오늘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남
아있는 유적만으로도 그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고 만다. 하물며 로마시
대에는 어떠했을까? 주피터 신전 남쪽에 또 하나의 신전이 서있다. 주
피터 신전과 비교하면 작기 때문에 '소 신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도
면적이 750평이 넘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도 크다. 이 신전에
는 포도덩굴과 포도송이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포도주의 신인 '바
커스'(Bacchus) 신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커스 신전은 신기하게도
지붕 부분만을 제외하고는 로마시대 건축된 원형이 오늘까지 거의 그대
로 보존되어 로마시대 신전 중 가장 원형이남아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고대 건축연구의 귀중한 사료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문화사적으로 바알벡 신전들은 로마제국 건축문화의 정수를 보여준
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바알벡의 거대한 신전들은 기독교가 심하게 박
해받던 시대에 건축되었다. 이들 신전이 상징하는 로마제국의 종교와
비교하면 그 당시 기독교는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영광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고, 웅장하던 신전들은 거대
한 자취만을 남긴 채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핍박받고 무력해 보이던
기독교는 전세계에 전파되었고 오늘날도 생명력있는 종교로서 문화와
사회와 세계를 변혁시키고 사람들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박준서 연세대 대학원장.시리아(바알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