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6장 급전 ⑤ ##.

"그래요. 결혼은 두사람이 하는 거죠.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저 혼
자서 결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명훈이 별 생각없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경진이 명훈을 매섭게
쏘아보며 되물었다.

"정말 몰라 물으세요?".

그러는 그녀의 두눈에서는 언젠가처럼 새파란 불길이 이는 듯했다.
이 여자가 내 현재를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 언뜻 생각이 거기에 미
치자 명훈은 절로 움츠러 들었다. 하지만 모든걸 그녀의 결정대로 받
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됐어. 너하고는 더욱.".

명훈은 억지로 오기를 일으켜 만난 뒤 처음으로 강한 어투를 썼다.
그때 마침 시킨 음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명훈은 내친 김이라 더
욱 거침없이 나갔다.

"어이, 여기 맥주도 두병 가져와!".

명훈이 그렇게 술을 주문하자 경진이 차갑게 말했다.

"안돼요. 우선 술부터 줄이세요. 이봐요, 여기 맥주 필요 없어요!".

그렇게 되면서 방안은 두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터로 변해갔
다. 경진과 어떤 묵계가 있었는지 어머니도 인철도 말없이 그런 명훈
과 경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야, 너 뭘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데… 나 정말 결혼할 마음 없어.
특히 너하고는. 그렇게도 몰라? 그때 너희집에 가지 않고 바로 사라진
거, 그게 바로 너와 결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구.".

술이 그리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의사가 경진에
의해 저지된 게 난감하기 그지 없는 그녀의 결정을 흔들어 보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명훈의 충동질에 흔들리지 않았다.

"좀 조용하세요. 잘한 것도 없으면서… 지금 어머님과 인철씨가 식
사하고 계시잖아요?".

오래된 아내처럼 그렇게 핀잔을 주어놓고 명훈은 아예 무시한 채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이것 저것 어머니와 인철의 시중을 들었다. 그러
면서 그들과 그런 자리에 어울리는 담소를 나누는 게 그렇게 자연스러
울 수가 없었다.

명훈은 까닭 모를 소외감까지 느끼며 그들이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
다. 애꿎은 보리차만 비워대다가 그들의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해서
야 그도 경진을 무시한 채 어머니쪽으로 대화창구를 바꾸었다.

"그런데 어머님 이거 어떻게 된겁니까?"
"뭘 말이로? 우리가 광주대단지 어딘강 갔던 얘기는 인철이한테 대
강을 들었을게고, 내 식모살이 나서고 옥경이 공장간 일도 알게고…
야 만나게 된 일말가?".

"그일도 그렇지만 이 뚱딴지같은 결혼얘기는 뭡니까?"
"야는 인철이한테 듣고 내 일하는 집에 찾아왔대. 그래서 보이, 내
하마 돌내골서 볼 때부터 알았다마는, 갈데 없는 우리 사람이라. 그래
고 뚱딴지 같다이, 어째 니 결혼이 뚱딴지같노? 남은 밤잠 안자가며
어예믄 산지사방 흩어진 이 집 다시 세워볼꼬 궁리해 짜낸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