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5장 아버지 찾기 ⑦ ##.
인철은 전해 삼선개헌을 반대하는 데모가 대학가를 휩쓸 때 한번도
데모대에 끼지 못하는 자신을 변명하듯 읽은 그 방면의 글들을 떠올리
며 그렇게 대답을 끼워 맞췄다. 그러나 군사정부의 보상적 기능에 대
해서는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로스토우가 말한 도약단계란 것
도 한물간 이론가의 질낮은 아첨 정도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럼 김지하가 쓴 '오적'이란 시는 어떻게 보았소? 정인숙여인 피
살사건은? 와우아파트 붕괴는?".
그가 댄 그 사건들은 모두 그해 일어난 것들로 '오적'이란 담시를
빼고는 인철의 의식에 그다지 강하게 와닿지 못했다.
"솔직히 그 '오적'이란 시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걸 읽
은 우리문학회 시인지망생들에 의하면 문학적으로는 그리 세련된 작품
이 아니라더군요. 그래도 그걸 쓴 사람의 용기에 대해서는 감탄하고
있습니다. 정인숙여인이 죽은 것은 신문에서 읽었는데 그저 배후가 좀
복잡한 치정살인사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와우아파트는 부실공사로
무너진거 아닙니까?".
인철이 그렇게 반문하자 갑자기 그의 목소리에 열기가 더해졌다.
"짐작은 했지만 이건 좀 심하군. 이봐요. 사회적 현상들은 얼른 보
아 별개로 일어나고 있는 듯하지만 종합하면 한 사회가 처해 있는 상
황을 읽을 수가 있는거요. 정인숙여인의 피살사건은 군부 파쇼정권의
갈데까지 간 도덕적 부패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고, 와우아파트 붕괴
는 그들이 면죄부로 내놓는 경제적보상의 허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
는 것이오. 그리고 '오적'은 그런 군부 파쇼독재에 지성인들의 저항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소. 종합적으로 박정희 군부독재는 이제 말기
적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오.".
그러자 인철은 문득 그해 봄 수락산에 갔다가 주워 읽은 불온 삐라
의 내용이 떠올랐다. 제목은 '색마의 결혼식'으로 되어 있고 두사람의
결혼 사진이 합성되어 있는데, 남자는 박정희였고 여자는 죽은 정인숙
이란 여인이었다. 곁들여 쓰인 글의 내용에는 박정희가 정인숙을 데리
고 놀다가 '제놈을 쏙 빼어담은 새끼를 낳자' 그녀를 죽였으나 이제
멀지않아 그도 죽으리라는 저주였다. 그때 인철은 거기서 어떤 정치적
조짐을 읽기 보다는 북한의 대남선전이 치졸함을 느꼈을 뿐이었다.
또 인철은 그 얼마전 어떤 유명한 가수가 '신고산이 우르르…' '와
우산이 우르르…'로 바꾸어 부르다가 사법적 제재까지 논의된 적이 있
음을 떠올렸다. 그때 역시도 그게 남한사회의 어떤 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기보다는 사법당국의 호들갑으로만 느꼈다. 그런데 그것들이
김지하의 '오적'과 같은 선상에 놓이는 사회적 사건들로 논의되는 것
을 보고 은근한 위축을 느꼈다.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같은 남한의 현 상황과 사회주의 사상연구와는 어떤 관
계를 가집니까?".
인철은 처음부터 안고 있던 불안을 누르며 짐짓 그렇게 물었다. 그
러자 그의 목소리에 더욱 열기가 실렸다.
"단순히 관념적인 인식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행동으로 전화되
어야 할 신념체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오. 거기까지 동의해야만 본
사상연구회의 회원될 자격이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