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세잔 피카소에서 잭슨폴록, 드 쿠닝, 프랑크 스텔라까지.
경제 한파로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요즘이
지만, 문화의 영역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20세기를 찬연하게 수
놓은 미술가들의 오리지널 회화들을 지척에서 보고 있노라면 예술만
이 주는 훈향에 일상의 고단함은 잠시 저만치 물러난다. 네덜란드 암
스테르담 스테델릭('시립'이란 뜻의 네덜란드어) 미술관 소장품 전시
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갤러리(02-771-2381)에 사람
들의 발길이 모이는 것은 이때문인지도 모른다.
17일부터 3월15일까지 '20세기의 미술'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이
전시는 사물을 화면에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던 19세기 미술이 인
상주의 이후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 현대미술로 건너왔는지를 60여점
의 명화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전시다. 작년 일본 5개 도
시를 순회한 후 한국에 왔다. 대가들의 명화도 명화지만 우선 잘 짜
여진 디스플레이가 교육적 의도를 뒷받침한다.
전시는 일단 고흐로 시작한다. 햇살을 붓끝으로 톡톡 끊어 그린
듯한 고흐의 '파리 몽마르트르의 채소밭'(1887년작) 옆으론 프랑스작
가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마을'(1906년작)과 독일화가 칼 슈미트-로
틀루프의 '당가스트의 풍경'(1910년작)이 걸려있다. 관람객들은 나란
히 걸린 이 작품들을 보면서 고흐의 작은 점들이 후배들 그림에선 점
점 커지면서 사물의 형상이 뭉개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자연을
원통, 구, 원뿔로 보라'고 했던 세잔의 '생트 빅트와르산'(1888년작)
근처엔 브라크의 입체주의적인 '주전자와 병이 있는 정물'(1909년작)
과 피카소의 '기타가 있는 정물'(1924년작) 등이 놓여 세잔의 주장이
입체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전시장을 훑어가면 2차대전 이후 물감을 화면에 아무
렇게나 뿌리는 액션 페인팅의 잭슨 폴록과 추상표현주의의 윌렘 드
쿠닝 등을 만난다. 이들의 활약으로 현대미술의 주도권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면, 이어서 60년대 들어 도널드
저드나 프랭크 스텔라의 미니멀리즘, 만화를 확대한 리히텐스타인 등
의 팝아트가 미국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70
년대이후 이에 대한 반발로 이탈리아작가들을 중심으로 다시 화면에
색과 형태를 가득채워 넣은 '트랜스 아방가르드' 등이 떠오르면서 중
심축을 유럽으로 당겨오려는 등의 전과정이 펼쳐진다. 2층에선 미술
관이 위치한 네덜란드에서 1920∼1930년대에 일었던 사실주의 경향의
미술을 샬리 토롭 등 6명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결국 어떤 시기에 어떤 미술사조들이 주도권을 잡다
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새 경향에 주도권을 넘겨주는가를 역동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미술이 그저 음풍농월하며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는 권력투쟁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
이기도 하다. 전시기간 중 매일 오후2시와 4시엔 관람객을 위한 작품
설명회가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 관람료는 일반 4천원, 중-고교
생 2천원. '김한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