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증권업계의 '기린아'였던 페레그린사는 '아시아적
경영 스타일'로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그 청산 과정은 매우
서구적이다. 홍콩에서 자생, 일본을 제외하고는 아시아 최대
증권사라는 상징성과 비중에도 불구하고 페레그린사에 대한
처리는 철저히 서구의 시장경제원리를 따르고 있다.
홍콩 특구 당국은 지난 9일 페레그린사의 자구 계획이
실패할 것이 확실해지자 곧바로 페레그린사의 모든 영업활동과
함께 증권거래소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페레그린사가 지난해
11월부터 스위스의 '취리히 센터 인베스트먼트'사, 미국의 퍼스트
시카고 은행과 벌여왔던 지분 매각 협상이 이날 최종적으로
결렬됐기 때문이다.
페레그린은 지난 주말 홍콩 통화당국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마지막으로 기사회생(기사회생)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페레그린사 파산으로 인한 금융시장 혼란 우려에도 불구, 홍콩
특구의 도널드 창 재무장관은 "페레그린사에 대한 구제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결국 페레그린이 청산을 신청한 12일 홍콩 증시는 8.6%나
폭락했다. 이로써 올들어서만 홍콩 증시의 상장주식 시가총액이
4분의 1이상 줄었다. 그러나 홍콩 증시가 13일 반등세로
돌아서면서 금융시장 붕괴 우려는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페레그린사는 13일 국제적인 회계법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를
청산기관으로 지정했다. 프라이스 워터하우스는 앞으로
페레그린의 재무상황을 실사한뒤 이를 토대로 자산의
매각처분과 채권자에 대한 변제조치 등의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이와 관련 일부 미국 은행들이 벌써부터 페레그린 계열사 인수에
관심을 표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페레그린사에 대한 홍콩 당국의 단호한 대응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변국들의 부실 금융기관 처리방식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한국은 이미 몇달째 사실상의 부도상태에 빠져있는 부실
종금사들에 대해 아직까지 최종적인 처리를 미루고 있다. 더욱이
부실 금융기관들의 단기외채 상환을 지원해주다 외환 고갈의
위기를 맞았다.
또 태국도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약속했던
부실 금융회사에 대한 정리를 미루다 국제 사회의 불신을 사면서
경제위기가 심화되기도 했다.< 김기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