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가 곧 닥쳐올 무더기 감원 바람으로 술렁이고 있다. 이미 국민,
외환은행 등 몇몇 은행이 명예퇴직작업을 시작한 데 이어, 정부가 13일
19개 부실 금융기관에 정리해고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금융산업구조개
선법 개정안을 1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키로 방침을 정하자 금융기관 직
원들은 일손을 놓은 채 불안한 표정이었다. 특히 정리해고의 1차 대상으
로 거론되고 있는 제일-서울은행을 포함한 19개 부실 금융기관들은 "마
침내 올 것이 왔다"며 체념한 모습이었다.

13일 오전 11시쯤 제일은행 본점 6층. 절전을 위해 꺼버린 전등으로
건물 복도는 동굴처럼 스산했다.

"서로 어떻게 할 건지 묻는 사람도 없어요. 1천여명을 퇴직시킬 것이
란 소문이 무성한데 20∼30년씩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싶겠습니까. 스스
로 결정해서 나가지 못하면 나중엔 정리해고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서로를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연신 담배를 피워물고 있던 한 중견 간
부는 답답한 듯 한숨으로 말을 맺었다.

명예퇴직 신청 마감을 이틀앞둔 서울은행은 신청자가 적을 경우 강제
퇴직시킬 '살생부'를 준비중이라는 소문으로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한
직원은 "집이 있는데도 주택자금 융자를 끌어다 쓴 사람이나 승진에서
몇 차례 누락된 사람이 우선 순위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본점은 이날 오후 각층 복도 끝 흡연실마다 3∼4명씩 모여
전날 마감한 명예퇴직신청을 화제로 두런거렸다. 한 직원은 "마감이 지
난 오늘 명퇴 신청서를 들고 와서 접수를 받아달라고 사정한 지점장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고려증권 직원 문명국씨는 "부도 직후 너무나 많은 감정
의 기복을 겪은 때문인지 별로 충격을 느끼지 못한다"며 "더 이상 놀랄
것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작년 1백75명을 내보낸데 이어 올해 또 다시 명예퇴직을 실시할 것으
로 알려진 한일은행 명동지점의 한 직원은 "올해 줄줄이 직장을 잃은 종
금사 동료들이나 정리해고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일부 시중은행을 보
면서 나갈바에야 돈 한푼이라도 더 받고 나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
다"고 말했다.

은행가 주변 식당 풍경도 우울하긴 마찬가지였다. 서울은행과 국민은
행 본점 뒤편의 허름한 찌개집에는 점심시간인 낮 12시30분쯤에도 빈자
리가 듬성듬성했다. 식당 주인은 "손님들이 '언제 여기서 밥 그만 먹게
될지 모르니 잘해달라'는 농담이 그냥 농담같지 않아 마음이 편하지 못
하다"고 말했다.'문갑식-조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