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A (30대 초반쯤의 젊은이)
B (50대 중반쯤의 신사)
--------꿈-------
무대는 칠흑같은 어둠. 포레의 음악 '꿈꾸고 난 후에'가 배경음악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으로 깔린다. 음악이 끝나갈 때쯤 볼륨
이 서서히 잦아지면서 두 인물 A와 B에만 탑조명이 들어온다. A는 세
미캐주얼 차림에 바바리를 입고있고 좀 피곤하고 초췌해 보인다. B는
그보다는 좀 표정에 여유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신사. 언밸런스한 차
림이지만 뭔가 독특한 자기 개성이 드러나는 의상이 자유로운 분위기
를 연출하고 있다. 두사람은 가까이 앉아 있지만 둘 다 객석 쪽을 바
라보고 있다. 조명이 들어옴과 동시에A의 대사가 시작된다.


A: (꿈에서 덜 깬 듯 몽롱한 표정으로) 참, 이상한 일이오. ,
B: 뭐가요?
A: 어젯밤 꿈.
,
B: 한번 얘기해보세요.

A: 난 긴 배를 노저어가고 있었어요.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왕자
가 신는 신발처럼 코끝이 구부러져 올라간 멋진 배였어요.

B: (여전히 시큰둥하게, 호기심을 감추고서) 어딜 가고 있었는데요?
A: 그건 나도 몰라요.그저 노를 저어 앞으로 앞으로만 가고 있었으
니까요. 노를 젓는 느낌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어요.깃털처럼 부드럽고 살같이 곧게 내 배는 가고 있었어요.

B: 파도가 없었나 보죠.
,
A: 파도라고요?(황당하다는 듯 웃는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요.

B: 그렇게 잔잔한 바다였나요?
A: 바다?
B: 예, 바다요!
A: 아니요. 바다가 아니었어요.

B: 그럼, 강이요?
A: (고개를 저으며) 아니오.
,
B: (이제서야 답을 찾았다는 듯 확신을 갖고) 그럼 호수였겠구만!
A: 아니오.(다시 꿈속을 헤매듯 몽롱한 시선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나는 끝없는 은빛 모래사장을 노저어가고 있었어요.

B: (놀란 표정으로) 모래사장을요? 말도 안돼요. ,
A: 그러니까 제가 이상한 일이라고 했잖아요.

B: 당신 혼자서?
A: 그래요. 난 혼자였어요.

B: 아무도 없었나요?
A: 어디 말씀이세요?
B: 모래사장 말이오.
,
A: 웬걸요. 사람들이 있었죠.

B: 그럼 사람들한테 물어보지 그랬어요. 거기가 어디냐고.
,
A: 아니, 그럴 수가 없었어요.
,
B: 왜요?
A: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 배가 너무 빨라서 난 그들의 얼굴
을 볼 수도 없었고 그래서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딜 가고 있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
B: 바보같네요. 배를 멈추고 물어보면 될걸.

A: 하지만 배를 멈출 수가 없었어요. 분명히 내가 노를 젓고 있었
지만 내 배는 마치 리모컨에의해 작동되는 장난감처럼 앞으로 앞
으로 계속 가고 있는 거예요.
,
B: 그래도 한번 멈추어볼 노력은 했어야죠.
,
A: 아니, 그러고 싶지가 않았어요.
,
B: 왜요?
A: 기분이 너무 좋았거든요.

B: (의아스런 표정으로, 그러다 심각한 듯 표정을 바꾸며) 젊은 양
반 이거 아주 나쁜 사람이구만!
A: 네? 뭐라고 하셨죠?
B: 젊은 양반이 나쁜 사람이라고 했소.

A: (갑작스런 꾸지람에 영문을 몰라하며)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B: 그럼, 있다마다요. 기분이 좋다고 그냥 막 가도 되는거요? 어디
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러다 못 돌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A: 돌아오다니 어디로요?
B: 여기, 이곳으로 말이오.

A: 여기가 어딘데요?
B: 나도 몰라요. 내 꿈속이니까.
,
A: 네? 그럼 제가 지금 당신 꿈속에 있단 말이에요? 말도 안돼요.,
B: 그래요.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중이오. 그런데 당신이 나타나
서 어젯밤 당신 꿈 얘기를 하고 있는거요.

A: (갑자기 꿈에서 확 깬 듯 사방을 둘러보며) 그, 그런데 당신 누
구요?
B: 나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좀 뜸을 들이다가) 난 여행자요. ,
A: 여행자라면, 여행이 직업이다 이 말씀인가요?
B: 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죠.
,
A: 그럼 아닐 수도 있다 그건가요?
B: 젊은 양반, 난 여행자이긴 한데 좀 특별한 여행자요.

A: 도대체 뭐가 특별하다는 거죠?
B: 난 꿈의 여행자요.
,
A: 네? 꿈의 여행자라구요?
B: 말하자면 꿈을 따라 여행하는 사람이다 이거죠. 그래서 당신도
이렇게 만나게 된 거 아니오?
A: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제가 당신 꿈속으로
들어오게 된 거죠?
B: 낸들 그걸 알 수가 있소? 내 꿈속 일인걸. 난 그저 당신이 말을
걸길래 장단을 맞춰 주었을 뿐이오.

A: (길 잃은 아이모양 황당한 표정으로) 그럼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B: 잠깐 기억을 잘 더듬어봐요. 어젯밤 꿈을 꾸기 전에 어디 있었소?
A: (확신없는 목소리로) 당신과 함께 있었지 않나요?
B: 아니, 그럴 리가 있나요? 난 오늘 당신을 처음 만났는데, 내 꿈
속에서.

A: 그런데 제가 오늘 처음 본 당신한테 제 꿈 얘기를 하고 있는 건
가요?
B: 그렇다니까요. 그것도 내 꿈속에서 말이지요. ,
A: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 잠깐만요.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됐죠?
B: 난 꿈속에서 여행을 떠났소.

A: 어디로요?
B: 그건 나도 몰라요. 꿈속 일이니까. 난 낮동안 끝없는 사막을 지
났소. 정말 뜨겁고 광활한 사막이었소. 나무는 물론 풀 한포기
없는 삭막한 사막이었소. 아니, 삭막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가
않소. 그 사막은 그 자체로 아주 아름다웠으니까요. 작열하는
태양과 그 빛을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 모래, 나는 그 광경
에 도취되어 타는 갈증도 잊을 수가 있었소. 그리고 마침내 밤이
왔을 때 그제서야 난 추위와허기를 느끼기 시작했지요. (그때 무
대 뒷 배경막에 별들이 총총히 나타난다. 그 한켠으로 초승달이
떠오른다) 그런데 바로 그때 멀리서 반짝이는 한점 불빛을 발견
한 거예요. 그래서 한걸음에 쫓아왔는데 와서 보니 당신이 달빛
아래 웅크리고 앉아 꿈을꾸고 있었소.

A: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 듯 사방을 둘러본다. 그러다 주위가
온통 칠흑같은 어둠 뿐인걸 알아채고 더욱 움츠러들며) 그럼 이
캄캄한 허허 벌판에 당신과 나 둘밖에 없단 말이요?
B: (실망을 주어 미안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런 것 같소.

A: (두려운 표정으로) 무서워요!
B: 뭐가요?
A: 모두들 다 어디 간 거죠?
B: 누구 말이요?
A: 세상 사람들 말이에요.

B: 세상 사람들은 다 세상에 있겠지요.여긴 지금 내 꿈속 세상이라
니까요!
A: 그럼 어떻게 당신 꿈이 아닌 세상으로 갈 수가 있을까요?
B: 글쎄요, 방법이야 하나밖에 없지 않겠소? 당신도 꿈속에서 헤매
다 길을 잃었으니 다시 꿈속으로 가보는 수밖에.

A: 정말 그럴까요?
B: 자,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해 봐요. 그리고 다시 당신 꿈속으로
들어가 보는거요.

A: 당신은 그동안 뭘 할 건데요?
B: 난 다시 내 길을 가야죠. 꿈속 길을. 난 여행자라고 하지 않았소
(서둘러 일어나려 한다.)
A: (B의 소매를 붙들며) 잠깐만! 가지 마세요. 제발요! 제가 잠들때
까지는…
B: (다시 앉으며) 좋아요. 당신이 잠들 때까지 곁에 있으리다. 그러
니 자, 어서 잠을 청해 봐요.(A는 웅크리고 앉아 두 팔에 얼굴을
묻고 B는 그 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A: 달이 저기 하늘높이 떠있는 걸 보니 여기가 달나라는 아닌 게죠?
B: (달을 쳐다보며) 글쎄, 그런 것 같지요?
A: 그런데 이상해요.달이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다시
위를 쳐다보며) 별이 어쩜 저렇게 많을까요? 이런 밤하늘을 이제
껏 본적이 없어요.(한참 뭔가 생각을 하다가) 참,여기도 한 이름
모를 별나라가 아닐까요? 저렇게 별들이 많은 걸 보니 여기도 조
그만 별나라가 아닌지 모르겠어요.

B: (빙긋이 웃으며) 글쎄요, 그런지도 모르죠
A: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그럼 내가 우주선을 타고 이곳
에 온걸까요?
B: 글쎄, 그런지도 모르죠.
,
A: (화난 목소리로) 대답이 왜 항상 그래요? (B의 말투를 흉내내며)
글쎄 그런지도 모르죠! 글쎄 그런지도 모르죠!
B: 그 대답 말고 할 수 있는 대답이 달리 있겠소?
A: 무책임하고 무기력해요!
B: 뭐가요?
A: 당신이요.

B: (A의 공격에 다소 놀란 듯) 왜요?
A: 진실을 회피하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겁쟁이예요.
,
B: 하, 하, 하!(황당한 웃음) 겁쟁이라고요? 조금 전에 무섭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소?
A: (기죽은 목소리로) 하지만 당신은 뭐든지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지도 모른다 하며 자신의 대답을 회피하고 있잖아요.

B: 그거야 그럴 수밖에 없으니 그렇지 않겠소? 당신과 나의 꿈속 일
을 낸들 어찌 달이다 별이다 할 수 있겠소. 그렇지 않아요? 젊은
양반!
A: (갑자기 추위와 허기를 느낀 듯) 춥고 배가 고파요. 그래서 잠도
오지 않나봐요.

B: 자, 꿈속에 당신이 좋아하는 맛있는 것들이 잔뜩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 그럼 빨리 그 속으로 가고 싶어질 테니.

A: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아세요? 전 만두킬러예요. 김이 모락모락 나
는 통만두(침을 꼴딱 삼키며), 다진 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은…
(다시 상상을 하다 허탈해진 표정으로) 생각할수록 더욱 괴롭기만
해요.

B: 자,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봐요. 내가 얘기 하나 해줄까요? 옛날
하고도 아주 먼 옛날 만두나라 얘기요.

A: (다시 고개를 번쩍 쳐들며) 저를 고문하기로 작정하셨어요? 만두
킬러한테 만두나라 얘기라뇨? 그럼 계속 침만 꼴딱꼴딱 삼키게 될
텐데 그 고문을 어떻게 견디라고요? 먹는 얘기 말고 없나요?
B: 당신이 만두킬러라고 했잖소? 그 말을 들으니 그 얘기가 생각난거
요. 이건 사실 아주 무시무시한 얘기요. 킬러 얘기니까요.

A: (갑자기 주위를 돌아보며 겁이 난듯) 이 캄캄한 밤중에 무서운 얘
기라뇨? 저는 공포영화라면 질색인 사람입니다. 괜히 사람을 놀래
키고 흥분시키는 그런 수법은 정말 체질에 안맞는다니까요. (그러
다 갑자기 B의 성의를 무시한 것같은 생각이 든 듯 B의 눈치를 슬
쩍 살피며) 정 할 얘기가 없으면 그 얘기라도 그냥 해보세요.

B: 자, 들어보면 다 교훈이 있는 얘기니 한번 들어봐요. 옛날 옛날에
만두 나라가 있었소.그 나라에는 물론 이름 그대로 만두들이 모여
서 살고있었죠.그런데 그 나라에는 만두 킬러가 살고 있었어요.만
두들을 항상 공포에 떨게 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킬러였지요. 그한
테 잡히기만 하면 만두의 생애는 한 입에 끝장나고 마니까요.

A: 만두의 생애라구요? 으하하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그리고 로
망 롤랑의 '베토벤의 생애'는 들어봤지만 '만두의생애'는 처음 듣
는데요?
B: 젊은 양반, 사람 얘기에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요. 이건 아
주 진지한 얘깁니다.

A: (B의 지적에 기가 죽어) 그저 농담을 좀 하고싶었을 뿐이에요. 자,
어서 계속해 보세요.

B: 어느 날 만두 나라에서는 대대적인 회의가 열렸소.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만두킬러를 어떻게 하면 처치할 수 있나를 연구하고 토
의하는 회의였죠.만두나라 만두들은 거의 다 모였을 정도로 이 회
의에 대한 만두들의 관심은 큰 것이었소. 그건 그들의 생사가 달
린 문제였으니 안그럴 리가 있었겠소? 왕만두가 먼저 말했죠. "자,
여러분,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 떨게하는 저 무서운 킬러를 처치할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어서 주저없이 말씀해주시오. 이건 여러분
개인 개인의 목숨뿐 아니라 우리 왕국의 생사가 걸린 문제요. 그
러니 지체말고 어서들 의견을 내주시오." 그러자 물만두가 먼저
나서며 이렇게 말했소. "임금님,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그 킬
러를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서 군만두가
그의 말에 제동을 걸었소, 이렇게요. "아닙니다, 임금님. 그 방법
은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분명 수영을 할 수 있을 겁
니다. 물에 빠진 그가 다시 헤엄쳐나오기라도 하면 어떡하냔 말입
니까. 그는 더욱 포악한 킬러가 될지도 모릅니다. 역시 끓는 기름
으로 튀기는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찐만두가 나
서며 말했소. "그 방법도 100퍼센트 성공을 보장하긴 힘들어요.제
생각에는 우리가 모두 찐빵으로 둔갑을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
니다. 킬러가 제일 싫어하는게 찐빵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이 아닙니까? 겉만 바꾼들 킬러가 분명 의심을 할 거예요. 그러니
속을 단팥으로 바꾸어보는 겁니다." (A를 향해) 어때요?.

A: (갑작스런 질문에 놀라서) 네? 뭐가요?
B: 찐만두의 생각 말이요.
,
A: 글쎄요, 만두가 속을 찐빵으로 바꾸면 그건 만두가 아니잖아요?
B: 맞았어요. 바로 그거예요. 찐만두의 말에 왕만두가 일침을 가했
소. 들어봐요. "만두속을 팥으로 바꾼다고? 그건 말도 안될 소리
요. 그건 우리 만두들, 더 나아가 우리 만두왕국의 정체성을 불
안하게 하는 처사요." 그러자 좌중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듯 조
용해졌소. 모두들 서로 눈치만 살피며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
죠. 그때까지 모든것을 지켜보고 있던 꼬마만두가 씩씩하게 앞으
로 나서며 말했소. "방법이 하나 있어요." 모두들 놀란눈으로 이
당돌한 꼬마를 바라보았소. "우리가 모두 찐빵으로 변장을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연극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우리 만두는
그대로 있으면서 그 위에 찐빵을 한 꺼풀 씌우는 거예요. 그러면
만두는 만두대로 그대로 있으면서 찐빵인 체 할 수 있잖아요. 킬
러는 우리가 모두 찐빵으로 변장을 하면 일단은 의심을 할 거예
요. 그래서 한입 살짝 깨물어볼지도 모르죠. 그러나 킬러가 그토
록 싫어하는 단팥을 깨물게 되면 아마 질색을하고 우리나라를 떠
날 거예요. 제 의견이 어때요?".

A: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B: 어떻게 되긴요. 그렇게 되었죠.꼬마만두의 말대로 만두킬러는 만
두나라를 떠났고 그후 만두나라에는 오랜만에 아주 달콤한 평화
가 찾아왔지요.

A: 그래서요? 그 이야기의 교훈은요?
B: 젊은 양반, 교훈은 스스로 느끼고 찾는 거라오. 당신은 벌써 그
만두생각을 잊어버리지 않았소?.

A: 네, 정말 그래요. 단팥 이야기를 하는 순간 만두생각이 싹 가셔
버렸어요. ,
B: 그럼 됐네요. 그것으로 내 얘기는 충분히 값을 한 거니. 자, 이
제 다시 잠을 청해봐요. 그리고 다시 당신 꿈속으로 들어가 보는
거요.

A: 당신은 그동안 뭘 할 건데요?
B: 난 다시 내 길을 가야죠. 꿈속 길을. 난 여행자라고 하지 않았소!.

A는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양팔에 묻고 있고 B가 천천히 일어나 조
명 밖으로 사라지자 무대는 다시 칠흑같은 어둠만 남는다.

------잠------
무대에는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A는 그 나무아래 누워 자고
있고 B는 나무에 기대어 앉아 A를 바라보고 있다.

A: (잠에서 깨어나며) 여기가 어디지?
B: 섬이요.

A: 섬이라구요?
B: 그래요. 섬이요.

A: 어느 섬?
B: 그냥 섬이요. 이름은 나도 몰라요.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뿐이니 섬
은 섬인게지.

A: 바다라고요?
B: 그래요. 바다!
A: 그럼 배가 있어야 하는데…
B: 배는 왜? 뭘 하려고요?
A: 배가 있어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아닙니까?
B: 왜 이곳을 빠져나가려 하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A: 아 참, 그렇죠. (갑자기 놀란 듯)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 왜 여기
있는거죠?
B: 난 여행자요. 좀더 정확히 말하면, 꿈속의 여행자요. 꿈속에서 먼 여
행을 떠났는데 산 넘고 바다건너 이 섬에 도착을 했소.은빛 모래사장
이 한없이 펼쳐진 아주 아름다운 섬이었는데 저멀리에 동그란 물체가
하나 있어 달려와보니 탐스러운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아
래 누군가 누워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당신이었소.

A: (B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그러고 보니 당신은 조금 전 꿈에 만
났던 그 분이 아니신가요? 달빛 아래 사막 한가운데서.

B: (짐짓 모른 체하며 A의 얼굴을 뜯어보며) 글쎄요, 안면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잘 기억이 안나는군요.어디서
라고요?
A: 끝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서요. 당신이 제게 만두나라 얘기를 해주
셨잖아요.

B: 아, 당신이구료. 젊은 양반! 이제 기억나요. 달빛 아래 사막 한가운
데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죠?
A: 그래서 당신이 꿈길로 가보라고 해서 잠을 청했는데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당신을 또 만나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
죠?
B: 글쎄요, 거참 놀라운 조화네요. 난 그저 내 꿈길을 계속 가고 있었
을 뿐인데.

A: 뭐라구요? 그럼 난 당신 꿈속에 또다시 갇히고 만 거네요?
B: "꿈에 갇혔다!" 젊은 양반, 참 표현이 시적이면서 과격하네요. 그게
아니라 당신이 또 내 꿈길을 잠시 방문한 거죠.

A: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그런데 어떻게 이 섬에서 빠져나가죠?
배도 없는데… 참, 그런데 당신은 배도 없이 어떻게 이 섬에 왔나요?
B: 난 날아서 왔소.

A: 말도 안돼요. 날아서 왔다구요?
B: 그래요, 이렇게 훨훨 날아서 (팔을 펴고 나는 시늉을 해보인다).

A: 날개도 없이요?
B: 날개를 달 필요가 없었소. 팔을 이렇게 펴고만 있으면 절로 몸이 둥
실둥실 떴으니까. 젊은 양반, 날아본적 있소?(A는 말도 안되는 소리
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 기분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힘든 거라
오.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느껴지는 한없는 청량감, 정말 황홀하답
니다. 젊은 양반, 자유라는 느낌을 진하게 체험해본 적 있소?
A: 자유요?
B: 그래요, 자유! 우리가 그렇게도 많이 자주 사용하는 이 자유라는 말
을 난 날기 전에는 몸으로 느껴본 적이 없어요. 날아본 자만이 아마
그 느낌을 이해할 겁니다.

A: 난다구요?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그러다 떨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난 비행기도 무서워서 못타는 사람입니다.

B: 추락할까 봐요?
A: (작은 목소리로) 네, 그래요.

B: 젊은 양반, 추락의 매력을 모르는구만?
A: 추락은 추락이지 추락의 매력은 또 뭡니까?
B: 난 한번 추락했던 적이 있소.

A: 비행기에서요?
B: 아니요, 날다가요. 내가 아까 난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얘기했죠? 정
말이지 나는 순간, 그 순간은 세상 모든것이 다 내 품안에 있는 것처
럼 우쭐해집니다.

A: 그래서요?
B: 그래 난 계속 날개를 휘저었고 산으로 강으로 들판으로 훨훨 날았어
요. 그런데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갑자기 힘이 빠지기 시작한 거예
요.

A: 으악!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그래서, 그래서 추락했나요?
B: 아니, 좀더 기다려봐요. 이젠 더 이상 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순간
난 눈을감고 지친 상처투성이 날개를 감싸안았어요. 이상하죠. 그때
왜 눈물이 났는지. 내 날개에 대한 애잔한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면
서 심신이 아주 평안하고 정결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난
추락하기 시작했어요. 끝없는 추락이었죠. 내가 그렇게 높이 날고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울정도로 그렇게 길고 먼 추락이었어요.

A: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렇게 높은데서 떨어졌는데 죽지않았나요?
B: 죽다니요? (빙긋이 웃으며) 꿈에서 깼지요.

A: 아, 참, 꿈에서라고 했지요. 하기야 난 꿈속에서 모래사장을 노저어
갔었으니까요.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기냔 말입니다. (다시 주위를 돌
아보며) 그런데 조금 전 이 섬의 모래사장이 은빛이라고 하셨죠?
B: 네, 아주 눈부신 은빛이었소.

A: 그럼 혹시 이곳이 제가 꿈속에서 노저어 갔던 그곳이 아닐까요?
B: 그럴지도 모르죠. ,
A: (절망을 느끼며) 그럼 결국 난 또 그 이상한 꿈속으로 돌아온 거네
요.

B: 계속 그 속에 머물러 있다고 봐야죠. 그러고 보니 젊은 양반, 우린
동행이군요, 안그래요?
A: 네. 하지만 어떻게 돌아갈 수가 있죠?
B: 어디 말이요?
A: 세상으로 말입니다.

B: 어떤 세상 말이요? 세상은 끝도 없고 한도 없는데.

A: 세상이 끝도 없고 한도 없다니요?
B: 젊은 양반, 세상 끝의 경험을 해본 적 있소?
A: (갑자기 두려운 목소리로) 세상끝의 경험이라니요? 난 죽고 싶지 않
아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B: 내가 언제 죽음을 얘기했소? 젊은양반,혹시 직업이 시인 아니요? 감
성이 풍부한 만큼 오버센스도 좀 심한 거 아니요?
A: 세상 끝이란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요? 적어도 제겐 그래요.

B: 내가 얘기 하나 할까요?
A: 무슨 얘기요? 또 그 메스꺼운 만두나라 얘기요?
B: 허허, 그 얘기가 그렇게 효과적이었소? 아직도 메스껍다고 할 정도로
.

A: 그런 얘기가 아니라면 해보세요. 뭔데요?
B: 세상 끝의 향기에 관한 얘기요.

A: 세상 끝의 향기가 도대체 어떻다는 얘긴가요?
B: 옛날 옛날에 알렉산더 대왕이 있었소. 마케도니아의 정복왕 알렉산더
말이요.

A: 이건 옛날 얘기가 아니라 역사 얘기잖아요!
B: 살아있는 옛날 얘기가 바로 역사고 신화라오. 안 그래요? 알렉산더
대왕, 그는 가히 신화적인 인물이었다고 할 수가 있소.

A: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과 세상 끝의 향기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
는 건가요?
B: 그는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동방으로 영토를 확장한 거대한 왕국
의 왕이었소. 그의 대군은 동으로 동으로 세상 끝을 향해 진군을 했
소. 해가 뜨면 또 새로운 땅을 향해 말을 달렸고 해가 지면 지친 말
을 쉬게 하고 새로운 땅을 향한 정열을 잠시 잠재웠죠. 그런데 말이
요. 젊은 양반, 해지는 동방의 들녘을 바라보며 알렉산더 대왕이 무
엇을 느꼈다고 생각하시오?
A: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여) 글쎄요? 슬픔이요? 아니면 서글픔?
B: (깜짝 놀라며 과장되게)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소?
A: (B의 칭찬에 멋적은 듯) 그냥요. 왜 그렇잖아요. 해질녘이면 왠지 마
음이 쓸쓸한 게 평온한 슬픔, 서글픔 같은 것들을 느낄 때가 있잖아
요. 그도 인간이니까 뭐 그런 비슷한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거죠.


B: 젊은 양반은 역시 시인의 감성이 있소. 맞았어요. 알렉산더대왕은 그
때 막연한 우수에 젖어들곤 했다고 해요. 그건 물론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아니요. 신화적 인물에 대한 하나의 곁가지 얘기일 뿐이요.그
런데 난 그가 세상 끝의 향기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A: 당신의 말은 지나치게 시적이거나 뜬구름 같아서 이해 못하겠어요.

B: 그래요. 사실 그건 설명하기 힘든 거지요. 느껴야 알 수 있는 거니
까. 젊은 양반도 언젠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지 몰라요. 그럼
날 생각하며 한번 빙긋이 웃어줘요.

A: 그럼 당신도 그 향기, 그러니까 당신이 말한 그 세상 끝의 향기를 느
낀 적이 있나요?
B: 그럼요.

A: 언제요?
B: 매번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죠. 꿈 속을 여행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세상과 만납니다. 그리고 세상 끝의 향기를 느끼죠. 그건 평온한 슬
픔이고 달콤한 서글픔이며 경건한 아름다움이랍니다.

A: 또 결국 꿈 얘기로 돌아왔군요. 제길할! 난 꿈이니 세상끝의 향기 따
위는 관심 없어요. 난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꿈이 아닌 살아 있
는 세상,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 말이예요. 난 그곳으로 빨리 돌아
가고 싶어요!
B: 참 이상하네요. 모두들 꿈을 꾸고 싶어 안달인데 당신은 벗어나고 싶
어서 야단이니.

A: 방법이 없을까요?
B: 그걸 또 내게 묻는 거요? 난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지 않았소. 자
,
그럼 난 갑니다.

A: 어디로 가시는 거죠?
B: 내 길을 가야지요. 갈 길이 멉니다. 끝도 없는 꿈길을 여행 중이니까
요.


------꿈꿈-------
무대에는 온통 안개가 자욱하다. 자욱한 안개 속 풀밭 위에 A가 누워
있다.


A: (꿈에서 깨어나며 혼잣말로) 정말 이상한 꿈이었다. 그런 섬이 도대
체 어디에 있는 거야? 정말 지루한 꿈이었어.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이상한 노인네를 만나고,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며) 그런데 왜 이렇게 안개가 자욱하지? 한치앞이 안보
이네.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B의 실루엣이 안개속에 드러나는가 싶더니 A곁으로 성큼 다가온다.)
B: (반가운 목소리로) 안녕하시오, 젊은 양반! 또 만났군요.

A: 아니, 당신은? 꿈에 만났던 여행자 아닌가요?
B: 네, 맞아요. 잘 기억하는군요. 인연치곤 정말 끈질기죠? 이렇게 또
만나다니.

A: 벌써 여행을 끝내셨나 보죠?
B: 여행을 끝내다뇨? 여행자에게 여행의 끝이란 없답니다. 난 아직도
먼 꿈속 길을 여행중이랍니다.

A: (말도 안된다는 듯 깜짝 놀라며) 네? 그럼 제가 아직도 당신의 꿈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말인가요?
B: 글쎄, 그런 것 같소. 당신과 헤어진 후 얼마를 가다 난 넓은 들판
을 지나게 되었소.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
죠. 그런데 멀리서 나는 뭔가 동물의 소리, 풀밭을 스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소리를 따라 와보니 그건 양떼였소,
한 무리의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당신이 그 옆 젖은
풀밭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소. 그뿐이요.

A: (갑자기 한기를 느낀 듯 몸을 추스리며) 그럼 여기가 도대체 어딘
가요?
B: 아직도 그 섬이요. 은빛 모래사장과 사막과 나무, 안개와 양떼, 멋
있지 않아요?
A: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멋있다구요? 도대체 뭐가 멋있다는 거예요?
제발 그 얼토당토않은 말로 나를 자극하지 마세요. 난 빨리 돌아가
고 싶어요.

B: 돌아가다니? 어디로요?
A: 내 세상으로요!
B: 당신 세상이 어딘데요? 그럼 여긴 당신 세상이 아닌 내 세상인가요?
A: 여긴 꿈나라예요. 모든게 하룻밤 꿈에 불과한 없어져버릴 세계라 그
거죠.

B: 그럼, 당신의 세계는 영원한 것인가요?
A: 아뇨. 물론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 틈에서, 빌딩 숲
속에서 바쁘게 움직일 때 난 안심을 할 수가 있어요. "난 살아있구
나" 하고.

B: 그런데 이 환상적인 꿈의 섬에서는 "난 죽었구나" 하고 느낀다 이거
요?
A: 네, 그래요.

B: 참 이상한 양반도 다 있군요. ,
A: 난 꿈이니 환상이니 하는 것들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
B: 그래 당신은 그럼 뭘 믿습니까?
A: 제 자신을 믿지요.

B: 당신 스스로를 믿는다고요? 하하하!
A: (기분이 몹시 나쁜 듯) 아니, 왜 웃으시죠?
B: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면서 당신 스스로를 믿
는다니 우습지 않아요?
A: 지금 나를 비웃는 겁니까? 나도 이 찰거머리 같은 꿈의 미망에서 벗
어나기만 하면 활개칠 수 있는 세상이 있다구요!
B: 그래요, 누구나 꿈은 있게 마련이지요. 꿈꿀 수 없다면 우린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A: 꿈이라구요? 그 지긋지긋한 꿈 얘기는 이제 그만 좀 하세요. 꿈이라
면 정말 신물이 나요. 난 꿈이 아닌 살아있는 현실을 원합니다.

B: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이봐요. 젊은 양반! 당신은 지금 자신이 어
디 있다고 생각하시오?
A: 당신의 꿈속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B: 그렇다면 젊은 양반, 당신도 꿈을 믿긴 믿는구료. 당신이 내 꿈속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A: 그래서 제가 묻는 것 아닙니까? 당신의 꿈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요.

B: 젊은 양반! 당신이야말로 꿈속에 사는 사람이란 거 알아요? 도대체
당신이 어떻게 내 꿈속에 살아있단 말입니까? 그게 말이나 되는 얘
깁니까? 난 먼 여행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꿈이라고믿는 지
금 이 순간은 바로 당신의 현실, 당신의 세상이란 말이요.

A: (너무나 황당한 듯) 네? 이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구요?
B: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 난 갑니다. 당신이 그렇게 원하던 일이 이
루어졌으니.

A: (자신도 모르게 따라일어서며) 어디로 가신단 말입니까? 나 혼자 여
기 두고.

B: 난 내 길을 가야지요. 난 먼 여행자라고 하지 않았소.


B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A는 멍하니 서 있는데 무대는 서서히 어두
워진다.

------잠------
기차가 덜컹거리며 가는 소리. A와 B는 나란히 앉아있다. A는 잠에 취
해있고 B는 그의 잠든 모습을 빙긋이 바라보고 있다.


A: (잠꼬대하는 소리로) 아니, 가지 마세요! 어디로? (그러다 화들짝 놀
라며 꿈에서 깨어난다.)
B: 젊은 양반! 왜 그래요? 악몽을 꾼 모양이구만!
A: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여기가 어디죠?
B: 어디긴 어디요, 기차 안이지. 젊은 양반, 잠 한번 정말 끝내주게 자
데요.

A: (좀 멋적은 듯) 제가 그렇게 오래 잤나요?
B: 그래요. 세 시간은 족히 잤을거요. 만두 좀 드시라고 깨우고 싶었는
데 하도 곤히 주무시길래 그냥 놔두었지요. 아주 피곤했나봐요.

A: 네, 정말 피곤하고 이상한 꿈이었어요.(그는 아직도 꿈속에서 만났
던 B와 지금 그 옆에 앉아있는 B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혼돈스
런 상태에서 갑자기 B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선생님이 제가 꿈속에
서 만났던 그 여행자시죠?
B: (금시초문이라는 듯) 네? 젊은 양반, 아직도 꿈에서 덜 깨어났나 봐
요. 하지만 이거 대단한 영광인데요? 오늘 처음 만난 젊은 양반
의 꿈에도 등장하고, 하기야 꿈속에서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소? 우
리가 이렇게 함께 앉아있는 것도 인연인데 꿈속에선들 못 만날 리가
없지 않겠소. (짐을 챙기며)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더니 자, 난 이번
에 내립니다. 다음이 종착역인 목포요.

A: 그런데 선생님은 어디로 가세요?
B: 글쎄요, 발길 닿는대로…
A: 그럼 목적지도 없이 여행을 한단 말입니까?
B: 난 여행자요. 여행자에겐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이라오. 젊은 양반은
그래 어딜 갑니까?
A: 땅끝까지 갑니다. 거기서 보길도로 가는 배를 타려고요.

B: 그런데 겨울에도 땅끝에서 보길도 가는 배를 운행하는지 모르겠네
요. 아니면 낭패잖아요? 그렇다고 날아갈 수도 없고…
A: 네?
B: 허허, 농담이요. 생각 많이 하세요.

A: 생각이라뇨? 무슨…
B: 겨울 섬은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아니요. 보길도, 아름다운
섬이죠. 자, 그럼 여행 잘 하십시오. 좋은 꿈도 많이 꾸시고…
A: (아직도 좀 몽롱한 듯 B에게 목례를 하며) 네, 그럼 안녕히….

B가 사라지자 차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승객 여러분,오랜 여행에 수
고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저희 철도를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
다.다음은 종착역인 목포입니다. 잊으신 물건 없이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열차내 아나운스멘트가 끝나자 젊은 가수 그룹의
노래소리(랩음악)가 흘러나온다.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어젯밤 네가 나를 찾아와 먼 여행을 떠나자고 했지
내 마음 두둥실 하늘을 날아 구름을 한아름 가슴에 안았지
그러나 깨어보니 그것은 꿈.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어젯밤 네가 나를 찾아와 눈덮인 겨울산 보고싶다 했지
내 가슴 하얀 풍선이 되어 하늘로 한없이 날아 올랐지
그러나 깨어보니 그것은 꿈.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어젯밤 네가 나를 찾아와 겨울바다 물새를 보러가자 했지
내 어깨는 커다란 날개를 달고 멀리 끝없이 날고 있었지
그러나 깨어보니 그것은 꿈.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우린 모두 꿈을 꾸고 잠을 자네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우린 모두 잠을 자고 꿈을 꾸네.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꿈 잠 꿈꿈 잠….

A는 여전히 조금은 몽롱한 시선으로 그러나 미소를 머금은 채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노래의 비트 강한 후렴소리 '꿈 잠 꿈꿈 잠'이 더욱 커
지면서 무대가 차츰 어두워지고, 이 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꿈을 꾸
고난 후에' 노래의 클라이막스가 겹쳐진다. 무대가 완전히 어두워진 상
태에서 그녀의 노래는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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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전남 여수 출생, 87년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87년4월부터 94년3월까지 월간 '객석' 연극담당 기자,
94년10월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에 입학, 현재
무대미술 공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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