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함영준기자】 21세기를 코 앞에 둔 1998년 아시아 각국에선
대규모 정치적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다. 동-서 냉전이 종식된 90년
대 들어 안정적 경제성장을 구가하던 동남아 국가들의 리더쉽이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인도차이나와 서아시아의 정정은 계속 불안하기만
하다. 심지어 일본조차도 9개나 되는 정당이 난립, 합종연횡을 되풀
이하는 등 정국은 혼미하기만 하다.
아시아 각국이 이같은 '불확실성의 정치시대'에 접어든 것은 수십
년간 지속된 장기집권이나 개발독재, 또는 기존 정치틀이 이미 그 수
명을 다했으며 국민들도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31년, 말레이시아는 17년간이나 사실상의 1인 독재가 진행돼왔고, 대
만과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당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여기에 작년에 발생한 아시아 경제위기는 기존 정치판의 입지를
뒤흔들고 있다. 이미 태국의 총리와 베트남의 공산당 서기장이 바뀌
었으며 한국도 50년만에 야당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우선 관심은 인구가 세계 4위(2억3백50만명) 대국인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장래. 1967년부터 1인자로 군림해온 수하르토 대통령(76)이
올 3월 대통령선거에서 7선에 나설 것인가부터 의문시된다. 금융위기,
기근, 산불연기까지 겹쳐 최악의 일년을 보낸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의
중병설까지 겹치면서 공공연하게 후계자가 거론되고 있다. 유력한 후
계자로는 수하르토의 장녀 시티 하르디얀티(48)가 거론되나 이런 식
의 승계가 실제 이뤄질 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이웃 말레이시아의 모하마드 마하티르 총리(72) 아성도 흔들리고
있다. 그의 '등록상표'였던 고도성장-팽창 정책은 지난 12월5일 IMF
의 영향력하에 저성장-긴축정책으로 방향전환을 하면서 사실상 시효
를 만료했다. 국민들은 현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안와르 부총리겸 재
무장관을 '포스트 마하티르 시대'를 이끌어갈 새 지도자감으로 서서
히 인식하고 있다. 반 마하티르적 시각을 가진 서방국가들은 이런 분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태국은 작년 11월 경제실정의 책임을 지고 총리가 추안 릭파이로
바뀌었으나 안정은 요원한듯 하다. 군사쿠데타설까지 나돌고 있다.
필리핀은 오는 6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민주화 이후 세번
째 대통령 선거에서 '필리핀의 레이건'을 꿈꾸는 영화배우 출신 야당
후보 요셉 에스트라다 부통령이 지금까지는 가장 유력하나 필리핀 정
정도 워낙 가변적이라 더 지켜봐야 한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경우, 베트남에선 실권자가 온건개방파인 도
무오이 서기장(88)에서 강경 보수파인 레 카 피에우 대장(66)으로 바
뀌었다. 작년말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 인사는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
난에 동남아 경제위기 여파까지 겹친 상황을, 군부를 통한 강경통치
로 돌파하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작년 7월 무력으로 권력을 장
악한 캄보디아의 훈센 부총리의 앞길도 불투명하기만 하다.
서아시아의 인도는 소수연정에 의한 불안한 내각이 작년 11월 무
너져 버린후 현재 과도정부체제로 운용되고 있다. 50년 역사중 절반
을 군부통치로 일관해온 파키스탄 역시 나와즈 샤리프 민선총리가 군
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대만 국민들은 작년 11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야당인 민진당
에 최초로 압승을 가져다 줬다. 비록 경제상황은 다른 아시아국가보
다 좋지만 집권 국민당의 50년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변
화를 갈망하는 심리가 표출됐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심리는 일본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전후 계속 집
권해오다시피한 자민당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식상은 결국 3당 연합체
제의 여당과 6∼7개 야당이 난립하는 기형적 정치판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올해 아시아는 그 어느 해보다 격동의 한해를 기록하게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