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저녁 7시를 갓 넘겨 어둑해진 여의도 MBC사옥 앞은 '시
위현장' 같았다. 이날 생방송된 MBC TV '인기가요 베스트 50'을 마치
고 나오는 스타들을 만나려고 방송사 입구를 막아선 10대들은 시내버
스가 질주하는 왕복4차선 도로를 거의 '점거'하고 있었다.

한해동안 가장 인기있던 가요를 뽑은 이날, H.O.T, 쿨,안재욱,언
타이틀, 박진영, 지누션, 양파, 임창정까지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이
틀 전 나눠준 입장권은 그날로 바로 동났지만 방송시작 2시간 전부터
혹시나 하며 방송사 앞에 줄을 선 학생 팬들만 몇백명이었다.

'절대적인 힙합의 선두주자 지누션' '클럽 H.O.T에겐 오직 H.O.T
뿐'…. 갖가지 글귀를 써놓은 현수막 뒤로 어른스런 퍼머머리부터 교
복 중학생까지 다양한 차림의 어린 팬들이 발을 구르며 웅성이고 있
다. 일부는 택시까지 대절해 도심속 '추격전'을 불사할 태세다."나는
H.O.T인데 자네는 누구인가?" "난 지누션일세." 10대들을 태운 채 기
다리면서 운전기사들은 다른 기사들이 누구를 쫓을지를 농담 반 확인
했다.

언타이틀 팬이라는 여중 2년생은 "H.O.T 팬들이 입장권을 돈 주고
미리 확보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학생은 "언타이틀과 팬
클럽의 미팅이 있다"며 건너편 보도에 늘어선 줄 뒤로 갔다. 인솔자
가 나서자 "하낫, 둘" 구령까지 맞춰가며 걸어서 인근 미팅장소로 행
진을 했다.

이에 앞선 생방송 현장은 5년여전 대통령유세 현장을 방불케했
다. '재원 쪽!' '토니 짱' '유리 내꺼야',현수막들이 홍수를 이룬 방
청석엔, 하늘색 점퍼모양 윗옷까지 맞춰 입은 팬클럽도 보였다. 이들
은 자기네가 '숭배'하는 가수가 등장하면 열광하다가도, 다른 가수가
나오면 시큰둥한 표정으로 옆 친구와 잡담을 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소리지르느라, 좋아하지 않는 가수가 나오면 다른 얘기하느라
노래를 제대로 즐기는 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갖가지 책이나 잡지
를 찢어 만든 종이꽃가루가 스튜디오를 뒤덮었고 폭죽소리도 방송 끝
날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5살도 안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언니 손을 잡고 가수가 나오는 입
구로 다가가려다 경비원 제지를 받자, 울먹이는 모습도 보였다.한 경
비원은 "생방송 내내 아이들한테 앉으라고 소리치고 나면 목이 다 쉰
다"며 "끝나고 나면 청소하는 데만도 3∼4시간씩 걸린다"고 푸념했
다. 이 경비원은 "그나마 아직까지 큰 사고 안난 게 다행"이라며 혀
를 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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