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포기했던 만남이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간 남편.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국립현충원에 위패까지 봉안돼 있는 남편이
설마 살아서 올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30일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살아 돌아오긴 오는가.
귀신이 돌아오는 건 아니것지…."
셋째 시동생 양병용(양병용·63)씨 집에서 남편의 탈북
소식을 전해들은 박옥임 할머니(71)는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남편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묻어놓고 살아온
할머니. 17살 새댁 시절이 언뜻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들 부부는 만남이 곧 헤어짐이었다. 백년가약을 맺은 건
일제말. 남편 양순용(양순용·71)씨는 결혼한지 얼마 뒤
징용으로 끌려갔다. 4형제의 장남이던 그는 '아버지가
끌려가면 집안이 기운다'는 생각에 아버지 대신 나섰다.
해방이 돼서 남편은 돌아왔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이어
한국전쟁이 터졌고 남편은 다시 사병으로 참전했다. 그리고
얼마 후 포로가 돼 전사했다는 소식이 고향으로 전해졌다.
젖먹이 딸 2명을 남겨놓은 채였다. 남편보다 앞서 입대한
첫째 시동생 택용씨의 전사소식도 전해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 막막했어.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어." 나이 어린 새댁은 그래도 아들 2명을 졸지에 잃고
몸져 누은 시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병용씨는
"형수는 눈물 흘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슬픔은 끝이 아니었다. 믿고 의지하던 딸들마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첫째딸은 10살쯤 되던 해 일본뇌염으로 죽었고,
부산에서 직장에 다니던 둘째딸마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내 팔잔데 누굴 원망하겠어. 딸들한테 그랬지. '모두 아버지
곁으로 가거라'하고 말이야. 나중에 죽어 하늘에서 만나자고
했지."
병용씨와 함께 살던 박 할머니는 딸들마저 세상을 떠나자
20여년전 집을 나와 2백여m 떨어진 곳에 혼자 살림을 꾸렸다.
복없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다른 가족들에게도 안좋을 것
같았다.
"이젠 얼굴도 어릿어릿 해. 만나도 알아볼 수나 있을까. 그
사람도 고생 꽤나 했을텐데…." 평생 남 앞에서 한숨소리
한번 내쉬지 않았고, 눈물 한번 보이지 않았다는 박 할머니.
딸을 잃고 시작했다는 담배를 피워 문 할머니의 눈은 어느새
충혈돼 있었다.
【함양=최원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