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대한 절제된 진술...숨어있는 무언가를 보게해준 `경전'##.
보들레르와 이성복은 내게 시를 쓰도록 강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먼저 태어나 시를 쓰지 않았던들, 나는 시를 써보겠다고 매달리지도,
그런 엉뚱한 꿈을 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성복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처음 만난 것은 85년 봄이었다. 그 시집의
출판연도는 80년이었다. 그 시집이 나오고 5년이 지난뒤에 나는 비로
소 그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어떻게 읽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몇번인가 읽기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집에 실린 시들에는 나를 사
로잡고 놔주지 않던 구절이 몇 군데씩 있었다. 나는 그런 부분에 밑
줄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가끔씩
가방을 어딘가에 놓고 왔고, 취중에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었
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26쇄이
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잠을 못자게
만들었다. 그는 나를 별천지로 이끌고 가서는 희귀한 것들 속에 숨어
있는 희귀한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삶은 어떻게든 견뎌
야 하는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또 어디로든지 끝까지 가라고 일러
주었다. 내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서 제일 먼저 읽은 것
은 '아픔'이었다. 그는 뒤표지글에 이렇게 적어 놓았었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라고.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실린 대부분의 시들은 진술형식에
맞춰져 있었다. 그 진술들은 대단히 절제되어, 아픔을 말하고 있지만
아픔자체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의 시의 속도는 굉장히 빨라서 멈
칫하는 사이에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연상'이 연상을 불
러 이어져가는 그 속도는 '놀라울'정도였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따
라가야 하나? 나는 그를 따라가다 번번이 주저앉고 말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숨쉴 틈도 주지 않
았지만 어디로 가는지, 언제까지 달려갈지 끝까지 따라가 보지 않고
서는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뒤에 이렇게 썼던 기억이 남아있다. '길들은 구부러져, 엉켜, 무
엇을 묶을 수도 없었다./ 구부러진 채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때, 내게는 희망이 있었다. 그처럼 시를 써보는 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내게 끝없
이 이를 악물게 하는 힘을 주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를 따라갈
수 없음을 알았다.
그가 간 길을 따라가는 대신, 나는 그 길을 비켜가지 않을 수 없었
다. 보들레르는 인생의 병원에 입원시켜 주었고, 나는 거기서 이성복
이라는 의사를 만났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백번쯤 읽었
을 때, 그동안 읽었던 시들은 맛이 없어서 다시는 찾지 않은 식당으
로 변했다.
나는 그에 대해 13년을 상상해 왔다. 그의 시집들은, 내가 빠져든
종교의 경전이었다. 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나를 그 종교에 빠지게 만든 입문서 같은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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