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한 이타미 주조는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 최고 명성을 얻어온 일본의 대표적 감독이었다. 오즈 야스지로와
루이스 부누엘에게서 영향받은 그는 특정 소재에 안주하지 않고, 일본
사회 구석구석의 환부를 날카롭게 건드려대는 문제의식을 견지해 왔다.
그는 10편의 작품을 통해 일본식 자본주의와 조직화된 범죄, 관료사회
와 경직된 법률체계, 그리고 위선에 가득찬 중산층의 삶에까지 전방위
적인 야유를 보냈다. 그의 영화들은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독특한 풍
자 코미디 스타일로 엮어져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이타미 주조가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쉰살을 갓 넘긴 84년이었다.
데뷔작 '장례식'은 한 노인의 일본전통 장례절차를 차분하게 배경으로
묘사하면서, 다양한 인간군상의 양태를 그려낸 블랙코미디. 영화속에
서 롤스 로이스를 타고온 스님은 장례집전보다 사례비용에 관심이 더
많고, 망자의 사위는 장례 도중 정부의 요구에 못이겨 뒷산에서 정사
를 나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위선에 대한 폭로와 삶에 대한
관조가 기이하게 뒤섞인 이 독특한 영화는 일본에서 크게 히트하며 해
외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 작품은 96년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
와의 유사성으로 새삼 국내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85년작 '담뽀뽀'(85년)는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일명
'라면 웨스턴'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최고 맛을 지닌 라면을 만들려
애쓰는 식당 여주인과 트럭 운전사의 노력을 담아냈다. 라면 먹는 표
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고, 구도의 길을 가는 것처럼 요리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을 과장법 섞인 유머로 묘사한 이 영화는, 음식이 담긴
에로틱한 이미지를 손에 만져질 듯 탄력있게 살려내 단번에 걸작 반열
에 올랐다.
이후 그는 국세청 탈세를 다룬 '마루사의 여자'(87년), 현대 게이
샤의 세계를 그려낸 '아게만'(90년), 야쿠자 조직을 다룬 '민보의 여
자'(92년)를 잇달아 내놓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지위에 올랐다.야
쿠자를 치졸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묘사한 '민보의 여자'를 만든 뒤에
는 야쿠자들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굴하지 않
고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아가며 용기있게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이때
의 경험에 옴 진리교 사건을 녹여내, 올해 그는 사이비종교집단의 살
인사건을 목격해 쫓기는 여자를 내세운 '신변보호대상의 여자'를 완성
하기도 했다.
그의 아내 미야모토 노부코는 남편의 전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하
면서 절묘한 호흡을 이뤄왔다. 이타미 주조는 유서에 "일본 최고의 아
내이며 배우인 미야모토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