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무용가, 연출가, 탤런트, 작곡가, 방송인, 시인, 소설가, 교
수…. '코스모폴리탄' 장두이(45)는 이력이 다채롭다. 거친 학교부터
그렇다. 고려대 국문과를 나와 서울예전 연극과와 무용과를 다시 다녔
다. 이어 미국 뉴욕 머스커닝엄 무용학교를 수료했고, 뉴욕시립대 브
루클린대학원에선 연극석사를 땄다.
장두이는 78년 뉴욕 라마마극단 초청을 받아 미국에 건너갔다. 94
년 영구귀국할 때까지 미국과 유럽을 무대로 활동했다. 현대연극 거장
피터 브룩과 그로토우스키와 공연하는 행운도 누렸다. 안드레이 서반,
엘리자베스 솨도스 같은 라마마극단의 세계적 연출가, 음악가와도 호
흡을 맞췄다.
그는 89년 극작-연출-음악을 도맡은 '심청의 노래'를 공연해 뉴욕
타임스로부터 호평받았다. 비슷한 시기 브로드웨이 공연작 '타락한 천
사(Fallen Angel)'에서도 "위트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
다. 한마디로 그는 뉴욕에서도 꽤 성공한 연극인이었다. 그러다 불현
듯 귀국했다.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아 왔을뿐"이라 한다.
강렬한 눈빛과 콧수염이 어울리는 장두이는 그래서인지 악역을 자주
맡는다. 중년부인과 불륜에 빠진 인테리어사업가(94년 '첼로'), 악마
메피스토(95년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 냉혹한 킬러(96년 '달빛멜
로디') 같은 작품에서 그랬다. "연기력은 악역에서 돋보인다"는 연기
철학을 지니고 있다.
장두이는 신체연기가 뛰어나다. 특히 목소리가 좋다. '첼로'에서 부
른 노래 '생명의 양식'은 청아했다.'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를 본 손
숙은 "그의 목소리는 맑고 아름답고 때로는 우렁차다. 발음은 정확하
고 몸은 유연하고 눈빛은 강렬해서 눈부시다. 나는 장두이에게 홀딱
빠졌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하지만 간혹 생경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는 "늘상 새로운 것을 추
구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수긍한다. '문화
게릴라'이윤택은 호흡이 가장 잘맞는 연출가다. "이윤택은 내가 갖고
있는에너지를 잘 활용하는 것같다"고 말한다. 이윤택도 '대표적 40대
배우'로 장두이를 친다.
장두이의 내력은 연기만큼이나 극적이다. 고려대 국문과에 입학했지
만 연극동아리 '극예술연구회'에 파묻혀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곤 서
울예전 연극과를 지망했다. 3대 독자의 기벽을 꺾으려는 부모 반대도
허사였다. 내친 김에 다시 무용과까지 졸업했다.
78년 라마마극단 초청으로 뉴욕에 건너가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았
다. 연수기간 8개월이 끝나자 '불법체류자'를 선택했다. 7년 뒤 영주
권을 받을 때까지 생존과 예술을 걸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 아침 8시
부터 12시간씩 야채가게에서 일했다. 밤10시면 머스커닝엄 무용학교로
달려갔다.
새벽 4시에 여는 시장 철물점에서 봉투도 날랐다. 주급 2백달러였다.
가게에서도 미친 놈 소리를 들어가며 대사를 외우고 춤을 연습했다.몸
을 너무 혹사해 소변에서 핏덩어리가 나왔다. 병원에서는 신장 한쪽이
헐었다고 했다. 지난 4월 공연한 '맨하탄 1번지'에는 그 시절 체험이
배 있다.
검은 점퍼와 헐렁한 티셔츠, 목도리와 모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올해초부터 대경전문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강단에 서면서도 자유분방
한 스타일로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욕심도 여전하다. 그는 "2년
에 1번씩 내 생각이 담긴 무용발표회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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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경기도 고양 출생.
▲고려대 국문과, 서울예전 연극과-무용과 졸. 뉴욕 시립대 브루클린
대학원 연극과 석사.
▲오비에(OBIE) 연극상(79-83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95년·
'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