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Cyber)시대'
의 TV네트워크는 동시다발적 집단발병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다.
16일 일본에서는 TV만화영화를 시청하던 어린이들이 집단적으로 간
질 증세를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다. TV공중파를 통한 이같은 집단발병 사
례는 초유의 일이어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이날 저녁 7시쯤 TV를 통해 인기만화 '포켓 몬스터(약칭 포케몬)'
를 시청하던 일본 전역의 어린이 수백명이 동시에 신체적 이상을 호소했
다.
두통과 발열, 호흡장애와 함께 눈동자가 풀어지고 침을 흘리는 등
전형적인 간질증세였다. 한 5세 여자아이는 3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으며,
시각장애를 일으킨 초등학교 1학년생도 있었다.
피해자는 나가사키에서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전역에서 속출
했다.
이 증세로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은 어린이는 6백90여명이나 된다.
입원한 어린이들은 대부분 간단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증세가 가셔
귀가했으나 1백50여명은 17일 낮까지도 입원중이다.
현재로선 뇌손상 등 후유증의 우려도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의사
들은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례없는 집단발병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아 논란이 계속 확
산되고 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간질병의 일종인 '광과민성 간질'이라고 분석한
다.
문제의 만화에서는 붉은 색과 푸른 색의 강렬한 섬광이 반복해 점
멸되는 장면이 나온다. 체질적으로 민감한 어린이는 이렇게 강한 광선에
노출될 경우 시신경을 통해 대뇌피질에 자극이 전달돼 간질 증세를 보
일수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TV를 시청하면 자극이 더욱 극대화된다고 전문
가들은 밝혔다.
하지만 일본국립소아병원 니헤이 신경외과장은 "광과민성 간질은
원래 체질적으로 간질병 인자를 보유한 사람에게만 발병한다"며 다른 의
견을 보였다.
그는 "이번 사건은 불특정 다수의 환자가 발병한 만큼 간질이라고
는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신과의사 가야마씨는 "집단 히스테리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
다.
7백50만장이 팔려나간 게임기회사 닌텐도의 게임소프트 캐릭터를
소재로 한 '포케몬'은 어린이 프로그램임에도 불구, 평균 시청률이 18%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들이 만화 내용에 몰입, 흥분한 나머지 동시에 히스
테리를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도 TV게임기를 통한 유사한 질병사례가 보고된 일이 적지 않
았다.
89년엔 일본 후쿠오카에서 TV게임을 하던 7∼12세 소년 5명이 전신
이 경직되는 증세를 보였으며, 91년엔 피해를 입은 미국 미시간주의 한
부모가 일본 닌텐도를 상대로 2백60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래서 '닌텐도 증후군'이란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게임기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동시에 시청하
는 TV를 통해 발병했다는 점에서 과거 사례와는 차원이 다르다.
TV방송은 물론, 인터넷이나 컴퓨터 통신 등 TV수상기가 커뮤니케이
션 수단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집단발병의 위험성은 갈수록 더욱
커질수 밖에 없다는 분석들이다.【동경=박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