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염병처럼 번진 '한국 불신 증후군'…"쓴약 삼킬 태세 안됐다" ##.

이제는 모든 게 '한국 잣대'가 아닌 '세계 잣대'가 통용되는 시절이
됐다.

아니 벌써부터 그랬는데 우리들만 너무 몰랐다. 우물 안에서만 하늘
을 쳐다봤다. 불과 며칠 사이에 벌어졌던 IMF 지원 거부·심야 협상·재
협상 요구 등 극과 극을 오간 숨가쁜 변전의 사이클이 우리의 실상을 말
해준다. 글로벌 시대의 글로벌 정보의 부재. 이것도 한몫 거들었다. 바
깥세상에서는 과연 요즘의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미국·일본·유
럽등지에서 보도되고 있는 '한국 관계 기사'들을 모았다.

최근 미국 언론들은 '한국 관계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리트 저널지 등 미국의 주요 신문들은 거의 하루
도 거르지 않고 한국 뉴스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중
90%가량의 소식이 '부도 직전에 놓인 한국 경제'에 관한 것이다. 만약
이기사들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어온 평범한 미국인들이라면 '한국=파
산'이라고 여길 법하다.

우선 이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는 잔인하기 짝이 없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12월11일자 1면 기사에서 미국 증권가인 월가의 전문가를 인
용,"한국 주식회사는 이미 파산한 상태"라며 "이제 부도 처리를 위한 서
류절차만 남았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국제 통화 분야의 전문가인 프린
스턴 대학의 피터 케넨 교수는 한국에 지원할 자금 제공을 중단, 세계
다른 시장에 분명한 교훈을 줘야 한다며 "솔직히 말해 앞으로 한국에 제
공될 IMF의 5백억달러의 돈은 한국의 부도로 피해를 입을 나라들을 위해
쓰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외국 언론의 입장에서 볼 때 기적으로까지 표현되던 한국 경제
성장의 신화는 IMF 구제 금융 신청으로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그러나 무너진 신화의 폐허는 황량하다. 특히 IMF 지원 결정에도 불
구하고 끝없이 추락하는 한국 경제의 상황은 더욱 그렇다. 이런 추락은
한국을 믿지 못하는 데서 시작됐다. 최근 미국 언론에는 한국에 대한 불
신이 가감 없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2월10일 뉴욕 타임스지는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미국과 일본 등
에게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한 기사를 특종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의 자
금요청을 차갑게 거절하는 미·일 관리들의 반응 바로 뒤 에 이 신문은
"그런 요구를 워싱턴과 도쿄에 공식 제기하기도 전에 먼저 공개적으로
세상에 흘리는 한국의 태도에 놀랐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
의 행동 그 자체는 이제 국제 사회의 관행을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이었
다.

부도 직전에 놓인 2개의 시중 은행인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한 한
국 정부의 구체(?) 조치는 이런 불신감에 더욱 불을 질렀다. 미국 언론
들은 이소식을 전하면서 "아직 한국이 IMF가 요구한 쓴 약을 삼킬 태세
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이런 보도
들이 국제 금융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명약관화하다.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하라"는 것이 이들의 일치된 요구다.

한국의 불신을 더욱 가증시키는 것은 코앞에 닥친 한국의 대통령 선
거다.

특히 'IMF 재협상'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국에 대한 불신 증후군'은
마치 전염병처럼 번졌다. 피셔 IMF 수석부총재가 한국에 대한 구제 금융
결정 직후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짧은 기간 동안 급하
게 이뤄진한국 경제에 대한 지원 조치에서 많은 경제적 가설들이 잘못돼
있을 수도있다. 따라서 이런 경제적 가정들은 현재의 지표에 맞춰 일부
수정될 수도 있다고 IMF측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방과 시장 원리에
맞춘 한국 금융기관 및 재벌 운용 논리 등 그 기본 골격은 결코 변할 수
없다는 것이 IMF의 입장이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앞으로 있을지 모를
다른 나라들에 대한 IMF 지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기본 원칙에 관
한사항이다.

그러나 IMF를 '국치'쯤으로 여기는 한국 내 감정에 편승한 정치권의
대응을 IMF로서는 그냥 간과하기 힘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 언론들은 한국인들의 정서를 주목하고 있다. '자존심
(Pride)'이라는 말은 모든 매체가 한국인들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
다. 문제는 이런 표현이 단지 한국인의 높은 긍지를 나타내고만 있는 것
은 아니라는 데있다. 이 말 속에는 세계의 가치(바꿔 말하면 미국적 가
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고집을, 또 한창 잘 나갈 때
는 세상 거칠 것 없이 무례하기까지 했던 한국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
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장래를 보는 시각도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우선 한국이
아직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월
스트리트 저널지 등 외국 언론들은 한국의 소비 절약 운동 또는 국채 보
상운동같은 것까지 가리켜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움직임이 아니다"고
했다. 미국 언론들이나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시장의 힘
에 움직이지 않는 '병든 한국의 금융 기관'들의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쩌면 미국 내 경제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리는 현
재의 아시아 경제권의 통화위기를 그 한복판에 있는 한국인들이 전혀 이
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깔려 있다. 뉴욕 타임스지는 "이제 한국이
라는 나라의 국가 부도(National Default)의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돌고
있다"며 "이는 정치적 압력에 못이긴 한국 정부가 다 쓰러져가는 금융기
관들을 구제하려 한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이는 일본이 취하고 있는 방식인데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그
런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경제력에 있다고 보도했다.

또 미국 언론들은 한때는 한국 신화의 주역인 양 우쭐거렸던 한국의
재벌들이야말로 현재 한국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한다. 재벌의
생존 자체를 시장의 기능에 맡길 것이지 과거처럼 정부와 금융권 등 서
로가 얽히고 설킨 상태에서 끌고나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장래와 관련, 미국 언론들은 한국 대통령 선거를 놓고도 고개
를 갸우뚱하고 있다. 권위 있는 영국의 시사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최
근호에서 "한국의 경제 위기는 가장 나쁜 시기에 왔다"며 한국 대통령
선거를 전후한 시기에서 비롯되는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
트지 역시 12월12일자 신문에서 '최근의 금융 위기에 성난 한국인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 신문
은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 경제 위기는 대통령 선거로 인한 권력의 공백
이 큰 원인이라며, 국가가 과단성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할 때 사실상
아무도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다고 했다. 특히 이 신문은 정치권에서 제
기된 IMF 재협상론이 큰 우려를 낳았으며 이는 인기 있는 발언으로 유권
자들의 마음만 사로잡고자 하는 전략이라고 지적, 정치 지도자들이 자제
하고 솔직하게 경제 회복 계획에 초점을 맞춘다면 시장의 신뢰감을 회복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과연
대통령 선거 이후에 얼마나 개선될 것인가에 대해 미국 언론들이 큰 기
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미국 언론에 비친 한국은 침몰을
앞둔 배와 다름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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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욕들어가며 도와줄 필요 있나"
12월11일자 뉴욕 타임스 서울발 르포(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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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씨는 이따금 솥을 휘저으며 리어카 옆에 서 있다. 이곳의 경제
위기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그가 파는 번데기 한컵을 선뜻 사려는 손님
들도 없다. 그러나 지금 김씨가 걱정하는 것은 이런 개인적 어려움이 아
니라 IMF로부터 받은 5백70억달러 상당의 구제 금융이다. 그는 (IMF 구
제금융이 이뤄진) 12월3일을 "국치일"이라며 이를 금세기 초에 일어난
일본의 한국 강점에 비유했다. 그리고는 "너무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이는 김씨만이 아니다. 숱한 한국인들은 12월3일을 "제2의 국치일"이
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인들은 지구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자존심 강하고 예민한 사람들이다. 한
국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둔 A 플러스의 학생이 갑자기 낙제생으로 전락
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 것 자체가 이미 경제적인 것 이상의 심리적인 고
문이다. 심장을 멎게 하는 서울 거리의 추위는 거의 손으로 만져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런 수치심은 현재 진행중인 대통령 선거
에는 물론, 앞으로 미국 일본 등과의 외교적·경제적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미 한국에서는 미국 정부가 구제 금융의 조건으로 설
정한 가혹한 요구들에 대해 깊은 분노가 존재하고 있다.

전 주미 한국대사인 현홍주씨는 "내년에 우리들은 반미 정서가 확대되
는 것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든 경제계든 일반 국민들이든
미국은 (IMF 구제 금융 등에서 나오는 분노의) 아주 손쉬운 타깃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마 미국인들은 이렇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세금으로 한국
을 도와야만 하는가를 의심케 될지 모른다. 물론 한국민들은 미국의 도
움에 대해 고마워하고는 있지만 분노와 당혹감으로 뒤범벅 돼 있다.

서양인들에게 IMF의 조건들은 그저 한국이 국제적 게임 룰에 따라 경
기하도록 만든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경제적 통제권을 상
실하는 데 대한 심각한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진다. 어쩌면 80년대 중반
일본 기업들이 미국의 은행과 재산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을 때 미국인들
이 느꼈던 근심과 비슷하다. 한국인들은 "우리는 앞으로 우리 문제를 스
스로 결정하거나 독자적 의견을 펼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의 불만과 고민의 중심은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개인적 공포에 집중돼 있지 않다. 다른 아시아인들은 경제 위기
에서 실업과 주가 폭락, 저축의 상실 등을 걱정하는 반면, 한국인들의
고민은 보다 넓고 공허한 데 맞춰져 있다. 한국이 전세계적으로 망신을
했다, 국가적 명예의 실추를 더 걱정하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들도 이같은 논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많은 한국 언론
들은 특히 미국과 일본에 적대적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 신문들은 최근
그 기세가 약해지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신문인 조선일보는 "우리의 자
존심이 상처받긴 했지만 고통과 분노가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폭발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에 분노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더 자신들의 정부
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정치인들은 경제 관료들에 대한 수사 및 처벌
을 요구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김영삼 대통령을 포함, 지금의 경제
위기의 책임자들을 감옥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동안 아마 미국인들은 '국산품 애용 운동'에 신경을 곤두
세우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전 국민적으로 외국산 호화 상품들
에대해 적대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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