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이 끝난 뒤였다. 이봉주가 간발의 차이로 은
메달을 차지했었다. 정봉수감독은 이봉주를 만나자 마자 신발부터 벗겼다.
말짱했다. 이봉주는 코오롱이 개발한 국산 마라톤화를 신고 뛰었었다. 일
천한국산마라톤화의 역사도 그렇지만 이봉주의 특이한 발모양 때문이었다.
이봉주는 알려진 대로 '짝발'에 '평발'이다. 컴퓨터 측정결과 왼발이
248㎜, 오른발이 244㎜로 4㎜의 차이가 있다. 평발은 발바닥 굴곡의 높이
가 낮은 걸 말한다. 마라토너로서는 큰 약점이다.
'불운의 마라토너' 김완기는 왼쪽과 오른쪽 다리 길이가 다르다. 왼
쪽이 10㎜ 더 길다. 오른쪽 신발 밑창을 왼쪽 보다 5㎜ 더 두껍게 만든
특수 마라톤화를 신고 출전하곤 했었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는 전형
적인 쇼트피치 스타일의 마라토너. 발의 앞부분에 유달리 강한 압력분포
를 나타내는 선수였으며 이 때문에 물집이 잡히곤 했었다.
마라토너들이 유일하게 받는 '문명의 도움'이 오히려 경기를 망치게
하는 경우는 숱하다. 신발 기능 이상으로 중도탈락하거나, 발꿈치 등이
벗겨져 피범벅이 되곤한다.
이봉주의 애틀랜타 은메달은 '평발과 짝발'을 이겨낸 인간승리이기도
하지만 '기술의 승리'라고도 한다.기술진들은 애틀랜타 마라톤 코스와 기
후부터 분석했었다. '섭씨 30.2도에 습도 58%, 3.3㎞까지 내리막, 28.2㎞
까지 평지….' 특이한 발 구조에 맞는 신발을 만드는건 기술적으로 큰 문
제가 아니었다. 고온다습한 애틀랜타 기후탓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하는
게 관건. 이를 위해 외부는 그물망(메시)을 떠 받치는 서리발 구조에 부
드러운 재질로 마감된 3단구조의 특수 냉감섬유가 사용됐다. 신발과 지면
의 마찰열을 차단하기 위해 중창부분은 특수 단열처리됐다.
코오롱 신발개발실 제장수과장은 "이제 선수들은 개인의 발 특성 뿐
아니라 코스와 기후에 따라서도 다른 신발을 신는 시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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