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은 전국에 널린 흔한 성중의 하나가 아니다. 거기엔 과학
이 있고 독특한 역사가 있다. 화성을 지은 사람은 개혁성향의 왕 정
조. 정조는 당쟁의 와중에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한을 위로하고자 화
성을 세웠다.
정조의 아버지는 사도세자라 불리는 사람으로 영조의
미움을사 한여름 뒤주속에갇힌지 8일만에 사망했다. 당시 극에 달했
던 당쟁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재촉했다. 1762년의 일이었다. 정조는
즉위 13년만인 1789년에 아버지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이 곳
에 자신이 꿈꿔온 이상적인 신도시를 세우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수
원화성이다. 화성은 1794년초부터 1796년말까지 약3년간에 걸쳐 축성
됐다.
정조와 함께 화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다.정
조가 '화성의 역사'라면 정약용은 '화성의 과학'이다. 당시 30세였던
정약용은 왕실서고 규장각에 비치된 첨단서적을 섭렵, 전혀 새로운
개념의 성을 설계했다. 정약용이 거중기를 설계해 공사에 직접 사용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화성 축성에 동원된 당시 기술자들은 조선 성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성의 장점도 연구, 화성을 동양최고의 성으로 만들
고자 했다. 그 자세한 내용은 '화성 성역의궤'에 기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