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도는데'(1972년)-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나훈아 노래.
강헌.
1950년대가 6·25전쟁으로 열리고, 60년대가 4·19혁명으로 규정된
다면, 70년대 한국사회 전개 과정은 평화시장에서 일어난 청년 노동자 전
태일의 분신으로 예견됐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절규는 산업화와 고속성장을 최고 가치
로 신봉하던 제3공화국의 그림자였다. 농촌 공동체는 해체되고 도시는
비대해졌다. 농촌 청년들은 무더기로 '서울로 가는 길'에 내몰렸다.
이들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필요한 슬픈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
고 뿌리 뽑힌 이들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이농과 망향의 노래는 72∼73년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메뉴가 되었다.
60년대말부터 남진과 용쟁호투 라이벌게임을 벌이던 나훈아는 72년
오아시스에서 지구레코드로 이적하면서 트롯 '물레방아 도는데'를 발표했
다.
앞뒤로 실린 '고향역'(임종수 작사-곡)과 '녹슬은 기찻길'(김광현
작사-곡)까지 3곡이 크게 히트하면서 '님과 함께'의 남진과 접전을 벌인
다.
30여년에 걸친 나훈아 노래 목록 첫 장에 기록될 이 곡들은 공업화
위주로 재편되던 전환기 사회의 내면을 현실적 서정으로 포착한 수작들이
다.
동시에 71년부터 불어닥친 '포크송 붐'에 대한 트롯 진영의 마지막
방파제였다.
비슷한 시기, 김상진도 '고향이 좋아' '이정표 없는 거리' '고향
아줌마'처럼 향수를 자극하는 '고향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다.
같은 망향이라도 '녹슬은 기찻길'은 분단을 모티브로 삼은 반면,
'물레방아 도는데'는 철저하게 산업화로 인한 실향을 노래하고 있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 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이 남긴 빈 자리는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
는데'로 형상화했다.
트롯은 무수한 비판과 격하의 드잡이에도 불구하고 30년대 이래 여
전히 주류 장르의 하나로 버텨왔다.
그 원동력은 이처럼 상투적 대중취향 안에서도 거의 본능적으로 빛
을 발하는 리얼리티의 마력에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