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죄악 은폐하려 '발칙한 며느리'·'낭비벽' 등 꾸며내 ##.

명성황후의 대중적인 호칭은 민비이다. 그러나 그 호칭이 일본인들
에 의해 붙여진 것이며 거기에 이미 '이왕가'나 '이씨 조선'처럼 비하
의 의도가 깔려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중들 사이에 널리 알
려진 명성황후의 행실도 일본인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과장된
것이 많다. 아마는 자신들의 죄악상을 은폐 내지 호도하기 위해 우리
마지막 황후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덮씌우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넘어가 명성황후에게
그릇된 선입견을 품고 있다. 우리 민중의 감정까지 세밀히 헤아려 교묘
하게 꾸며낸 논리에 넘어간 탓이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
례 몇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명성황후, 아니 민비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암탉
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란 속담 아닌 속담과 시아버지에게 맞선 불칙한
며느리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런 속담은 우리 것이 아니고, 불칙한 며
느리도 이 경우에는 통하지 않는다.

조선은 외형상 절대군주국가였고 명분으로 보면 명성황후와 대원군
은 군신 관계가 된다. 곧 명성황후는 부부일신의 예에 따라 군주인 고
종과 동격인 한편, 대원군은 고종의 생부(생부)일지라도 결국은 신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엄중한 군신의 명분은 뒤로 돌리고
사가에서의 명분인 시아버지와 며느리만 앞세워 며느리로서의 불칙함만
나무라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없는 속담까지 곁들여 전통적
인 남존여비 사상에까지 호소하고 있다.

● 신하들 모두 외면, 믿을 것은 친지들뿐.

두번째로 변호하고 싶은 것은 명성황후의 미신적 성향과 그로 인한
낭비벽이다. 알려지기로 황후는 미신에 깊이 빠져 무당을 군으로 봉하
고 매사를 거기 물어서 결정했으며, 세자를 위해서는 금강산 일만이천
봉에 봉우리마다 쌀 한섬과 비단 한 필을 바치게 했다. 얼핏 들으면 황
당해 보이지만 이해하려고 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종교적으로 보
면 조선왕조는 일관되게 숭유억불 정책을 취해왔다. 조선후기에 천주교
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불교보다 훨씬 강한금압 아래 있었다. 따
라서 전통적인 유가 집안 출신인 황후에게는 토속 신앙 이외에 특별히
가호를 빌만한 초월적 존재가 없었다. 토속 신앙이 미신으로 몰리고 무
당이 위험스런 사기꾼처럼 격하된것은 일본인이 들어온 뒤의 일이다.당
시로 보면 무속 신앙과 그 주관자인 무당은 대중적으로 신봉되고 있던
흠잡을 데 없는 신앙 체계였다.

금강산 일만이천봉과 관계된 낭비벽도 그렇다. 외형상으로 거기에
바쳐진 쌀과 비단은 낭비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누군가 우리 백성이 먹
고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합리와 과학이란 믿음 위에 자란 친일은 그
몇 십, 몇 백배의 쌀과 비단을 일본으로 실어내 그들을 배불리고 따뜻
하게 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짚어보고 싶은 것은 거의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척
족 정치다. 과연 명성황후 아래 정부의 요직은 민씨 일족이 오로지한
감이있고, 그게 조선 말의 정치를 그르친 원인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
다. 그러나 이 때도 먼저 부끄러워해야할 일은 황후가 그런 인사정책을
쓰지 않을수 없게 한 신민 일반의 불충이다.

지엄해야 할 왕실의 수라간에 독이 들어 왕세자를 평생의 불구로 만
들고, 황후의 침실에 화약이 묻히는 그런 왕조가 어디 있던가. 봉록은
그 왕실에서 받으면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은침략해오는 외국 세력인 신
하들로 그득한 조정이 어찌 온전한 조정일 수 있는가.그래서 한가닥 핏
줄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외로운 황후를 떠올리면 연민으로 가슴저
릴지언정 공정치 못한 인사만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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