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위기의 밑바닥엔 한때 일본 경제신화의
원동력으로 '칭송'받던 '관료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 대장성 관료들은 3년전 부실채권의 대명사로 불렸던 주택금
융전문회사(주전)문제만 처리하면 금융 불안은 말끔히 해소될 것이라
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신용조합과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한계'
금융기관의 도산이 이어지는데도 이를 '단발성 금융사고'로 치부함으
로써 근원 처방을 하는데 실기하고 말았다. 그들은 지금 일본을 대표
하는 4대 증권인 야마이치 증권 폐업 앞에서 '감사 체제에 한계가 있
다'는 변명만을 되뇌고 있다.

감독관청인 대장성은 야마이치가 오랜 기간 거액의 장부외 부채를
분식 결산해온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대장성은 95년 가을 일
본의 대외 신용도를 크게 실추시킨 다이와은행 사건에서도 거액 손실
을 사전에 적발하지 못했으며, 총회꾼에 대한 불법이익으로 경영진이
무더기로 쇠고랑을 찬 제일권업은행 사건에서도 막판까지 허위 보고
에 놀아났다.

'엘리트 관료 집단이 국가건설과 경제발전을 주도해 왔다'는 아시
아의 관료주의 신화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싱크탱크'를 자부해온 일본관료,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관료들은 어느 사이엔가 발전과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
이 되어버렸다.

관료주의 신화의 붕괴는 관료의 부패와 실정, 위기관리 능력의 부
재로 요약된다. 일본은 80년대말 미상장 주식을 정-관계에 대규모 살
포한 '리쿠르트 사건'으로 문부성과 노동성 사무차관이 동시에 구속
되는 '이변'을 경험했다. 93년 제네콘 독직 사건에선 나카무라 (중촌
희사랑)전장관을 비롯한 건설성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형무소로 갔다.
96년초 정부가 국민 반발을 무릅쓰고 혈세로 주전업계의 부실채권을
탕감키로 한 직후 터져나온 대장성 주계국 차장과 동경세관장의 스캔
들은 국민을, 실망감을 넘어 '적대감'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업자
가 제공하는 비행기로 외유하는 등 각종 접대와 향응을 받았으며 업
자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빌려 공무원신분에 어긋나는 부업을 하다 발
각됐다.

관료의 무능-부패 사례의 절정은 96년에 터져나온 '에이즈 약해사
건'이었다. 1천8백여명의 혈우병 환자가 비가열제제에 의한 에이즈
비루스에 감염됐으며 이 가운데 6백명이 발병, 4백명이 목숨을 잃은
일본 약해 사상 최대 참사는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행정의 전형이었다.
80년초반 미국 의학계는 임상실험 결과 비가열 제제가 에이즈 감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그러나 주무관청인 후생성은 적절
한 행정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비가열 제제의 수입과 국내 유통을
묵인했다. 제약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관업 유착'이었다.

에이즈 약해사건을 파헤친 간나오토 전후생장관은 "관료 행정에
오류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고집, 전임자가 벌여놓은 사업이나
결정은 시비를 불문하고 이어나가려는 못된 습성, 공정과 공평의 이
름으로 국민에게 피해와 고통을 강요하는 불공정함을 저지르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동경=이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