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닫던 76년 8월1일 오전. 온 국민들은 TV
앞을 떠날줄 몰랐다.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양정모·레슬링), 구기종목
으로는 처음인 여자배구의 동메달 획득등 낭보가 잇달아 전해졌기 때문.
평균신장이 7∼8㎝나 큰 헝가리를 맞아 3대1로 역전승. 선수들이 코트에
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국민들도 코끝이 '찡'
해 오는 감격에 젖었었다.
당시 출전선수 가운데 최단신(1m64)이었던 왼쪽 공격수 조혜정(44).
'나는 작은새'라는 애칭을 갖게 된 것이 이때였다. 장대같은 상대 블로킹
을 뚫고 강스파이크를 꽂아 넣던 모습은 외국인들의 눈에 깊은 인상을 심
어줬다.
지금은 냉면집(대구 '조가냉면') 사장으로 변신한 조씨.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아 오른다"고 말문을 열었다. 3-4위전보다는 예선
에서 동독에 3대2로 역전승했던 순간이 가장 또렷하다. "소련에게 1대3으
로 패한뒤 동독전마저 내주면 예선탈락하는 상황이었는 데, 먼저 두 세트
를 내주고 나서 내리 세 세트를 따냈거든요." 한국은 쿠바도 3대2로 누르
고 준결승에 올라 최강 일본에게 0대3으로 완패, 3-4위전으로 밀려났다.
일본은 소련을 누르고 금메달. 숨막혔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던 그의
표정에 당시의 감흥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유정혜,유경화,정순옥,변경자,백명선,이순복등이 당시 멤버. 김한수 대
신고 교장(현재 대신고 이사장)이 감독을 맡아 선수관리를 했고 전호관
코치(현 스포츠TV 해설위원)가 연습을 전담했다. 은메달을 목표로 삼았던
대표팀은 하루 11시간씩의 강훈을 견뎌야 했다. 오전 6시30분에 운동화를
신으면 밤늦게 숙소에 돌아갈 때까지 벗지 못했다. 무릎관절이 닳고 발이
아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
"나중에 일본은 하루 13시간씩 연습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연습시간
2시간 차이가 금메달-동메달로 나타난 셈이죠.".
국세청-대농을 거쳐 77년 은퇴, 현대건설 코치를 맡았다. 79년 이탈리
아 1부리그에 진출할 기회가 찾아왔다. 외국생활도 즐기고, 프로무대를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선뜻 응했다. 조창수 프로야구 전 삼성 감독대
행(48)과 약혼한 것도 그 무렵. 두사람의 만남은 71년 시작됐다. 조창수
씨는 국세청팀 주장이었던 김은희씨를 자주 찾아왔고 자연스럽게 어울리
게 됐던 조혜정씨와 사귀게 된 것.
"남편은 몬트리올 올림픽 직후 내가 유명해지자 '콧대가 높아져 피곤할
지도 모르겠다'며 결혼문제를 놓고 고민했다고 하더라구요.".
81년 귀국한 뒤 광주일고 야구감독이었던 조씨와 결혼, 광주에 신방을
차렸다. 이번에는 송원여고 코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1년뒤 큰딸 윤
희(16·범물여중3년)를 낳고 전업주부가 됐지만 배구에 대한 열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배구 대중화를 위해 생활체육 배구교실을 열고, 90년
에는 대한비치발리볼연맹 사무국장도 맡았다. 87년 서른넷의 늦은 나이에
수원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것은 '지도자의 꿈'을 이루려는 장기적인 포석
이었다.
95년 조혜정씨는 냉면집 사장으로 전혀 다른 삶을 시작했다. "윤희가
초등학교 6학년때 골프를 시켰더니 곧잘 하더군요. 남편과 상의해 박세리
같은 선수로 키워보자고 결정했지요." 삼성라이온즈 수석코치였던 남편
수입만으로는 뒷바라지가 버거워 시작한 일이었다. 화장실 청소며, 신발
정돈까지 정신없이 일했다. 맛이 괜찮다는 평이 알려지고 얼굴을 알아보
는 손님들도 많아 대성공이었다.
외모는 엄마를, 체격은 아버지를 각각 닮은 윤희는 '골프 유망주'로 손
꼽히고 있다는 게 그의 자랑. "삼성 감독대행에서 물러난 남편과 딸은 연
말쯤 미국 플로리다로 연수가기로 했어요. 남편은 야구, 딸은 골프를 더
욱 알차게 배우고 올겁니다." '스포츠 가족'의 든든한 안주인이 된 조씨
는 "5∼6년 뒤엔 '어린이 배구교실'을 열 것"이라며 배구에 대한 깊은 사
랑을 표시했다.【대구=홍헌표기자】.
◇프로필
▲53년생
▲동래초-부산여중-숭의여고-국세청-대농
▲70년 고3때 국가대표 발탁
▲73년 우루과이 제1회월드컵 최우수선수(MVP). 당시 한국은 3위.
▲76년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
▲77년 은퇴
▲78년 현대건설 코치
▲79년 이탈리아 1부리그 진출
▲81년 귀국후 조창수 전 삼성 감독대행과 결혼. 송원여고 코치
▲87년 수원대 체육학과 입학
▲90년 대한비치발리볼연맹 사무국장
▲95년 '조가냉면' 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