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장 가족 ⑧ ##.
그런데 인철에게는 아무래도 그날이 가족의 날인 듯했다. 어머니와
옥경을 두고 떼어지지 않는 발길로 등교한 인철은 다시 가족의 일과
관련된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마음에도 없는 첫 강의를 때우고 나오
는데 어딘가 낯익은 젊은 여자가 강의실 밖에서 기다리다가 머뭇거리
며 다가왔다.
"저, 실례지만 이 인철씨 아녜요?"
"네에, 그렇습니다만….".
인철은 대답을 흐리면서 급하게 기억속을 뒤져 보았다. 그러나 그
녀가 누군지는 얼른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인철에 비해 그녀는 그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다음 강의시간은 비어 있는 것같던데,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그러는 그녀의 목소리는 기억이 잘 안날 정도의 사람 치고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너무 젊어 또래로 보았는지 함께 나오던 급우들
이 짓궂은 눈길로 둘을 훑어보며 지나갔다. 그게 불쾌하지는 않았으나
공연히 당황스러워진 인철이 다시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저 남경진이라구 해요? 혹시 형님에게서 들어보지 않으셨어요?".
그러자 인철은 아, 하는 기분이 되어 그녀를 알아보았다. 지난 개
간시절초기 형이 한창 의욕에 차서 써나가던 '농군일기' 갈피와 형의
지갑속에 끼여 있던 사진이 떠오르고 '잡념'이란 제목의 수고시집 속
에 되풀이 불려지던 그 이름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사진속의 여자는
아직 청순한 소녀에 가까웠고, 그 이름도 일쑤 변형되어 있어서 인상
은 깊어도 현실의 그녀와 얼른 연결이 지어지지 않은 것같았다.
"알것 같습니다. 참 궁금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그
럼 나가시지요.".
그녀를 알아보자 인철도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마음
이 푸근해졌다. 형의 여자라 그런지 많아야 서너살 위일 것같은데도
갑자기 그녀가 한 세대는 빠른 어른처럼 느껴졌다. 거기다가 그녀가
은근히 걱정스럽던 형의 소식을 가지고 왔을거란 기대 때문에 반갑기
까지 했다. 어머니가 상심할까봐 입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전날밤 내내
인철이 궁금해한 것은 형이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 일
년씩이나 내게도 어머니에게도 소식이 없는 것일까….
"형님은 잘 계시겠지요?".
교정의 빈 벤치에 자리를 잡으면서 인철은 당연한 듯 그렇게 물었
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묘했다. 조금전까지도 맑고 환하던 얼굴이
한순간에 어둡고 굳어지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럼 인철씨도 형님의 소식을 모르고 계신다는 얘긴데…. 언제 형
님을 마지막으로 보셨죠?"
"벌써 일년이 넘었습니다. 입시 마무리 준비를 위해 서울로 올라올
때 안광에서 본게 마지막이니까요."
"그럼 지난 6월까지는 잘 계셨다고 대답할 수 있겠네요. 저는 그때
뵙고 아직….".
그러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금세
울음이라도 쏟을 것같은 그녀가 애처롭기 그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것은 궁금증이었다.
"6월에요? 어디서요?"
"양평에서요. 제가 근무하는 국민학교로 찾아오셨더군요."
"그럼 그동안 주욱 왕래가 있었던게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