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로 끝난 폭력 혁명…점진 개혁했다면 달라졌을 러시아 ##.
김학준(인천대총장).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17년에 러시아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큰
혁명이 일어났다. 2월에는 부르주아 세력이 로마노프 왕조의 짜리즘을
무너뜨리고 임시정부를 세웠던 것으로 이를 2월 혁명이라 부른다. 그로
부터 여덟달 뒤인 10월에는 공산주의 세력 가운데 폭력 혁명론자들이
중심이 돼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 국
가를 세웠는데 이는 10월 혁명이라 불린다.
두 개의 혁명이 일어나던 때 러시아에서는 구력을 썼다. 그러나 공
산주의 국가, 곧 소비에트 러시아가 세워진 뒤 구력을 폐지하고 신력을
썼다. 그래서 2월 혁명은 3월 혁명이 되고 10월 혁명은 11월 혁명이 된
다. 신력에 따라 지난 11월7일이 10월 혁명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2월 혁명도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었지만 10월 혁명은 훨신 더 큰 사
건이었다. 왜냐하면 10월 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처음 일어난 공산주의
혁명이었고, 또 그 혁명에 의해 '노동자 대표들과 병사 대표들의 협의
체'에 근거한 정부와 국가가 인류 역사상 처음 세워졌기 때문이다. 협
의체를 러시아 말로소비에트라고 부르며, 그래서 그 정부와 그 국가를
소비에트 정부, 소비에트 국가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소비에트 정부
체제와 소비에트 국가 체제는 이 때 처음 성립된 것이었다.
10월 혁명 주역은 볼셰비키였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과격한 타
도를 주장한 마르크시즘에, 러시아 특유의 폭력 혁명론과 결부시켜 볼
셰비즘을 만들어 낸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래서 10월
혁명을 볼셰비키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볼셰비키 혁명가, 특히 레닌은 자신들이 세운 소비에트 국가가 영구
불멸하리라 확신했다. 자신들의 적인 자본주의 국가는 모두 소멸될 것
이지만 자신들이 세운 공산주의 국가는 전세계로 확산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1992년에 소련이 해체됨으로써
소비에트 러시아 역사는 75년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소련 해체를
앞뒤로 해 세계 여러 나라들에 자리잡았던 공산주의 정권들은 거의 무
너지고 말았다. 반면에 자본주의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련
의 후계 국가인 오늘날의 러시아 연방에서도 자본주의가 도입돼 자본주
의 경제가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역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도 모스크바에 자리잡은 크렘린 광장에 세워진 레닌 국립묘지는 헐어
없어지고 레닌 시체를 부모와 누이동생 등이 묻힌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반면 황제 제도를 부활
시켜 로마노프 왕조 후예를 황제로 모셔야 한다는 주장 역시 강하게 일
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닌은 어떤 심정으로 이러한 역사 반전을 대할 것인가. 그
는 볼셰비즘에 대한 신념을 아직도 갖고 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소련의 '큰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브레진스키 교수가 소련이 붕괴하기 몇해
앞서 정확히 예언했 듯 소련 해체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이 점을 이해
하기위해서는 잠시 제정 러시아에서 벌어졌던 사회주의 혁명 운동의 큰
물줄기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첫번째 물줄기는 이른바 멘셰비즘이었다. 멘셰비즘을 옹호했던 사회
주의 혁명가들, 곧 멘셰비키에 따르면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은 공개
적이며 자발적이고 대중적 조직의 반체제 활동을 통해 성취돼야 한다.
그 조직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민주적 조직이어야 하며, 어느 한
계급의 독점적 지배 아래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력들의 이해 관
계가 균형 있게 반영된 가운데 다원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그들에 따르면 일단 반체제 운동이 성공해 짜리즘이 타도되고 나면
2단계로 혁명이 수행돼야 한다. 첫번째 단계는 부르주아 혁명 단계이고
두번째 단계는 사회주의 혁명 단계이다.
이러한 내용의 멘셰비즘은 종국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와 공통의 광
장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멘셰비키 지도자들 가운데는 서
유럽 사회주의 운동계의 수정주의자들과 호흡을 같이할 만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독일 수정주의자들은 과격한 혁명을 통해서보다 의회민주
주의에 입각한 점진적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고치고 노
동자권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멘셰비즘이 그것에 일치하
는 것은 아니었으나 궁극적으로는 공통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이었다.
두번째 물줄기가 바로 볼셰비즘이었다. 이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했
듯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을 통한 짜리즘의 타도와 집권을 옹호하는 이
론이었다.
우선 짜리즘 타도를 위한 혁명 방법으로 소수 음모가들에 의한 지하
정당조직을 제의했다. 이 조직은 위로부터 아래로 일사불란하게 지휘되
는 상명하복 조직이어야 했다. 따라서 당내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허용
될 수 없었다. 이처럼 엘리트 중심적 조직은 폭력으로 국가의 핵심적
기관들에 결정적타격을 가해 그것들을 마비시킨 뒤 장악해야 한다고 볼
셰비즘은 가르쳤다.
실제로 10월 혁명은 그러한 방식에 의해 실현됐다. 그것은 아래로부
터 일어난 광범위하면서도 자발적 민중 봉기에 의해 성취된 것이 아니
라 트로츠키가 이미 장악하고 있던 군부의 무력 봉기를 통해 성취된 것
이었다. 10월 혁명을 쿠데타로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 "공산주의 이름 아래 1억명이 죽었다".
그러면 집권 이후 길은 어떠해야 하나. 볼셰비즘에 따르면 멘셰비즘
이 옹호하는 2단계 이론 같은 것은 전혀 용납될 수 없고 곧바로 1당 독
재체재에들어가야 하며 부르주아 세력을 비롯한 반혁명 세력은 철저히
타도돼야 한다. 그리고 타도를 집행하기 위해 국가 안의 국가라고 할수
있는 절대적권력의 공안기구가 발족해야 한다.
실제로 소련은 10월 혁명 이후 그 길을 걸었다. 국가의 공안기구는
공산당 1당 독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서방 세계에서 존중되는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한 채 권력을 마구 휘둘렀다. 그리하여 소련은 프롤레타
리아계급이 독재를 행하는 국가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해 독
재를 행하는 반프롤레타리아 국가 또는 반인민적 국가로 전락했던 것이
다.
이 점은 10월 혁명 8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1월6일 프랑스 파리에
서 발매된 '공산주의 흑서'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11명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소련의 75년 역사에서 약 2천만명이 국가
폭력에의해 죽었다고 밝힌 것이다. 전세계적으로는 거의 1세기 동안에
공산주의 이름 아래 약 1억명이 죽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국가가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하고 자신의 국민들에게 행사
하는 체제에서 인간이 창의성과 활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음은 당연
하다. 그러므로 폭력의 중심 기구인 소련 공산당은 결국 망해버렸고 그
것에 의존했던 소련은 해체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레닌으로서도 변명할 말이 따로 없을 것이다. 레닌 스
스로 그처럼 뜨겁게 옹호했던 폭력이 한때 소비에트 국가 체제를 유지
시켰으나 더 길게 존속시킬 수 없었음을 뒤늦게나마 새삼 깨달았을 것
이다. 그것이 볼셰비즘의 필연적 귀결이었음을 탄식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하나의 가상을 제시해본다. 만일 제정 러시아가 멘셰비즘의
길을 따라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제정 러시아는 결국 점진적 개혁주의
길을 걸어 정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유럽의 한 부분을 형성할 수 있었
을까. 우리로서도 깊이 생각할 만한 주제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