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베레스포드의 '파라다이스 로드'(폭스)가 비디오로 출시된다.
호주출신 베레스포드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블랙 로브' '라스트
댄스'에서 섬세하고 유장한 맛을 주는 연출 재능을 보였다. 신작 '파라
다이스 로드'는 2차 대전 때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
탕으로 한 휴먼드라마다.
2차대전 말 일본이 싱가포르를 공습하자 연합군측 부녀자들이 고국
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배가 일본군 공격으로 침몰되고 생존자
들은 일본군 점령지 수마트라섬에 올랐다가 포로가 된다. 일본군은 여
자와 아이들을 따로 모아 수용소를 만들고 학대한다. 하나둘 죽어가는
비참한 상황에서 애드리앤은 선교사 드루몬드와 함께 악기 하나 없이
음성만으로 연주하는 음성 오케스트라를 만든다.
아무 소리도 없이 옛 흑백사진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배가 난파되기
까지 초반에서 상당히 사실적이고 무게있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전쟁
이면에서 여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를 상세히 묘사해 결말 인간승리
를 무리없이 끌어낸다. 글렌 클로즈, 프랜시스 맥도먼드, 존 콜린즈 등
연기파 여배우들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허밍으로만 부르는
'신세계 교향곡' 화음의 매력도 대단하다.
하지만 '파라다이스 로드'는 휴먼드라마 속에 인종 편견을 감춘 또
하나 영화로 기록된다. 일본인은 끊임없이 야만적인 민족으로 묘사한다.
특히 여자를 대하는 일본인 태도에 대한 비난에 초점을 둔다. 일본군에
대한 경멸이 전편을 덮고 있다. 아시아인 포로 윙은 암거래 죄목으로
산 채로 불태워죽이지만, 일본을 모독한 서양인 포로 수잔은 끝내 처형
되지 않는다. 싱가포르도 아내를 일상적으로 때리고 살인이 횡행하는
곳으로 설명한다. 이 영화가 하는 진짜 속 말은 "수용소에서도 의연한
서양여인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야만적인 일본인들을 감복시킨다"는 것
이다. < 이동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