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헌은 올 3월 LG에 입단하면서 마음을 다시 다졌다.
장신에 탄력과 중거리슛까지 겸비, 미래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기대
주로 주목을 끌면서 고려대에 입학한 게 93년. 그러나 대학 4년은 악몽
이었다. 걸출한 동료들에 밀려 벤치를 지키는 일이 잦아졌다. 몸싸움
에 능해 골밑수비만은 대학최고였지만 화려한 공격농구가 선호되는 풍토
에서 박재헌의 진가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위축되어 제 실력도 발휘못하고
경기장을 빠져나갈 때면 설움이 밀려오곤 했죠.".
94년 대학농구연맹전 MVP로 잠깐 반짝하는 듯 했으나 이내 현주엽
에 밀려 백업센터에 만족해야 했다. 95년 제1회 아시아대학농구대회에서
현주엽과전희철이 국가대표로 차출된 공백을 메우며 다시 떠올랐다.
경기당 평균 22점에 12리바운드. 그러나 현주엽이 돌아오자 박재
헌은 다시 후보신세였다. 결국 그렇게 대학시절은 흘러갔다. 프로에
입단했다. 경남 LG세이커스. 대학동기생 양희승에 묻혀 조용히 입단했
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농구공을 놓지 않았다. 시범경기가 시작되자
박재헌은 보란듯이 뜨기 시작했다.
팀 마스코트인 송골매처럼 날카롭고 집요하게 적진을 유린했다. 경
기당 평균 17.5점. 양희승이 연봉협상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박재헌은 일약 'LG의 희망'으로 솟아올랐다. 24세로 나이는 어리지만
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 LG에 없어서는 안될 '명실상부한 주전'이다.
미국 테츨라프고-아르테시아고를 거쳐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데이비
스분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 어학실력이 뛰어나 수입 용병인 버나드 블런
트, 로버트 보이킨스와 선수들간의 '통역' 역할도 하고 있다.
경기중에는 감독의 작전 지시를 전달하는 코트의 '소사령탑'이다.
본인은 "이름만 주장"이라며 겸손해 하지만 각오는 남다르다.
"약체로 꼽히는 우리 팀에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기적을 선사해
보이겠습니다.".
이충희감독도 기대가 크다.
"일단 기본적인 체력조건이 충실하고 워낙 노력하는 선수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박재헌은 11일 오후6시30분 나래 블루버드를 상대로 첫 도약을 시
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