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91)=이성재의 대국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틀전 1회전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격전끝에 중국 차오다위안을 꺾고 나온 그에
게 축하인사를 건넸을 때,그의 대답은 "감사합니다"가 아니었다. "그까
짓 한판 가지고요 뭘…" 이었다. 그 뉘앙스가 '겸양'보다는 '당연'쪽이
었다. 그 바둑은 이성재의 반집승. 내용도 그리 여유있는 승리는 아니
었는데, 좀 뻐긴다는 느낌을 받았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나중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쓸데없는 겸손이나 수
사 대신 '즉답'으로 자신의 심중을 건조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 한마디
에 그의 목표는 고작 16강 진입이 아니며,중국의 구단도 무섭지 않다는
자신감이 담겨있다. 약관의 이성재가 세계 제패의 당찬 야심을 가슴에
품고 있음을 확인한것은 즐거움이었다.

83에 붙이면서 전장은 우하귀로 옮겨졌다. 흔히 나오는 응수타진이
지만 변화가 제법 까다롭다. 이경우 백이 젖히는 것은 맞젖힘이나 끊음
을 당해 좋지않다는게 정설. 그렇다면 어느 한쪽으로 뻗는 수인데,참고1
도처럼 안쪽에서 뻗는 것은 흑6까지 이 흑을 잡는 수는 없다. 참고 2도
처럼 바깥쪽에서 뻗는 것도 흑10까지 되고 보면 백의 실패. 백 84는 고
심의 일착으로 상대의 수단의 여지를 좁히자는 뜻이다.

이렇게되면 흑도 곧바로 어느 한쪽을 젖히는 수는 좋지 않다. 85가
멋진 타개의 맥. 91까지 일단락됐다. 이제 백'가'면 패,'나'에 두면 자
체론 죽는 모습이지만 숱한 변화가 매복해 있다. 중요한 승부처를 맞아
이곳의 단 9수에 꼬박 1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