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 = 이미경기자 】.
"얘들아, 북을 칠 때는 몸을 써야지."
"단소 불 때는 몸을 펴고, 눈 위로 보지말고.".
경북 포항시 외곽 오천읍 문충초등학교. 붉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한
감나무 밑에서 어린 국악 음악대가 그윽하게 풍악을 울린다. 지휘자는
6학년 담임 이석우(33)씨. 지그시 눈을 감고 손을 내저으며 몸으로 가
락을 탄다.
이씨는 어린이들 가슴에 우리 소리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다. 87년
대구교육대 음악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직에 몸을 담은 지 꼭 10년. '흙
장난 말고는 할 것 없다는' 벽지 초등학교만 골라 지원하며 아이들에게
국악얼을 심고 있다.
그가 구사할 수 있는 국악은 민요, 창에 악기들을 포함해 21가지에
이른다. "문화시설, 학원 하나 없는 시골에서 제대로 국악교사 노릇을
하려면 모든 분야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갖은 잡일을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시골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도
그는 주말마다 전국 명인들을 쫓아다니며 악기를 익혔다. "국악은 전이
성이 강한 음악입니다. 단소를 불 줄 알면 대금은 금세 할 수 있고, 장
고를 배우면 북이나 꽹과리는 어렵잖게 칠 수 있지요.".
호주머니를 털어 교재용으로 사들인 국악기만도 6천만원어치가 넘는
다. 대금 60개를 비롯해 단소 40개, 퉁소 15개, 피리 10개, 가야금 5개,
사물 1백30개. "좋은 악기를 식별할 줄 모르고서는 좋은 연주를 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83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도 그는 별명이 '아마데우스'였다. 모차
르트를 연상시키는 헤어 스타일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곧잘 연주했던
덕분이다.
그러던 그에게 인생 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2학년 말 대구 한 록
카페에서 생전 처음 들은 대금 가락에 받은 '충격'이다.
"미쳤느냐"는 아버지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반드시 국악을 가르쳐
야겠다"고 뜻을 세웠다. 밤이면 대금 연습을 하느라 술자리까지 끊었다.
87년 교사로 임용된 이래, 그는 트럭에 온갖 국악기들을 싣고 구룡포
석병초등학교와 동부초등학교, 오천읍 구정초등학교를 옮겨다니며 전교
생에게 국악을 가르쳤다. 하지만 학교측은 국악에 매달리는 그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4번째로 94년 봄 부임한 학교가 지금 문충초등학교다. 전교
생이라야 통틀어 84명. 논 가운데 자리잡은 단출한 2층짜리 교사가 전
부인 시골학교다. 이듬해 부임해온 장오상 교장선생이 이씨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격려해주면서, 이 학교는 전국서 손꼽히는 '국악 명문'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이씨는 전교생을 모아 매일 오후 3시 수업이 끝나면
2시간씩 22개 국악 과목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쉽게 흥미를 갖는 사물놀이로 시작했다. 익숙해
지면 단소처럼 좀 더 정적인 악기로 들어갔다. 일단 3명을 가르치고 나
면 이들이 그 아래 수준 학생들을 피라미드식으로 가르쳤다. 아이들은
항상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배울 수 있게 했다. 이씨는 이를 '상설 뷔
페식 전수'라고 부른다.
이씨는 3백65일 학교에 나와 국악을 가르친다. 지난 설날에도 차례
만 마치고 학교에 왔다. 교사가 수업을 소홀히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밤 9시반까지 공부방도 별도로 운영했다.
그렇게 해서 문충초등학교 어린이들은 보통 7∼8가지 악기는 거뜬히
다룬다. 3학년 2학기 때부터 국악을 배워 12가지 악기를 배웠다는 6학
년 최민규군은 "우리 학교 아이들은 웬만한 창작국악 관현악곡은 1주일
안에 소화해 연주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어린이들은 94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내로라 하는 27개 전국규모 국
악경연대회에서 22차례나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선생님처럼 커서 국
악교사가 되고 싶다"는 6학년 이현우 군은 대금, 단소, 퉁소로 개인상
을 7개나 받았다.
"국악만큼 곧은 인성교육도 없을 겁니다. 연주 자세만 해도 제대로
잡지않으면 소리가 나지않으니, 자연스레 아이들 자세를 교정하는 효과
가 있지요." 그는 "보다 많은 어린이들이 국악과 가까워질 수 있게 평
생 초등학교 교단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