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51)은 90년대 초 '하얀전쟁' '남부군'으로 황금기를 노래한
한국영화계의 대표적 중견감독이다. 민족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파고든
이 두편 덕택에 그의 영화세계는 무겁고 메시지가 두드러지는 것 같은
인상을 짙게 남겼다. 그러나 그는 영화의 다양한 가능성에 일찍부터
눈떠온 영화광 출신이다.
그는 감독의 꿈을 품고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수석으로 합격했지만
"당장 영화찍고 싶은 사람 붙들고서 따분한 이론만 가르친다"며 뛰쳐
나왔다. 그는 고려대 불문과로 옮겨 졸업했다. 75년 충무로에 들어가
7년간 조수생활을 하다 78년 만든 데뷔작은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
다'라는 섹스 미스터리영화다. 82∼83년엔 MBC TV에 PD로 입사해 드
라마도 만든다. 그는 베스트셀러극장 10여편과 '암행어사'등을 찍었
고, 연출력을 인정받아 다시 영화로 복귀한다. 80년대 정지영은 '여
자가 숨는 숲' '산배암' 같은 상업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금기시되던 빨치산을 정면으로 다룬 '남부군'(90년)으로 청
룡상 감독상, 춘사영화상, 예술평론가상을 받으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다. 92년 베트남전을 다룬 '하얀전쟁'으로 도쿄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과 감독상까지 수상하면서 그는 심각한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이
미지를 굳혀갔다. 하지만 94년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로 자신의 영화
광 시절을 투영했고, 올해엔 에로틱 스릴러 '블랙잭'를 통해 초기 관
심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는 사회에 쟁점이 있을 땐 늘 앞장서서 목청 높여온 소장파의 맏
형이기도 했다. 86년엔 영화인 호헌반대 선언을 주도했고, 89년 9월엔
UIP직배영화 상영극장에 뱀을 넣었다가 구속까지 됐다. 지금도 스크린
쿼터감시단 위원장이자 감독협회 부회장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영화
운동가는 졸업하고 감독으로 머무르고 싶다"고 말한다. 정지영은 많은
관객이 공감하되 몰가치하지 않은 '건전한 대중영화'를 지향한다.
< 김명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