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시민의 가장 큰 꿈은 아마도 '청산에 살으리랏다'일 것 같
다. 그만큼 도시의 잡답이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와 있는 까닭일 것이
다. 완도에서 뱃길 50분, 거기에 청산이란 이름의 섬이 있다. 서울의
종로구만한 넓이에 북악산보다 조금 높은 산이 최고봉이다. 하지만 산
의 아기자기함과 양명함은 양자 사이의 비교를 거부한다.
이미 완도에 들어섰을 때 코를 찌르던 조금은 농익은 듯했던 갯내
음이 이곳 청산의 밥상에서는 코에 스며드는 것처럼 부드럽게 다가든
다. 여유로움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선창에는 삼치잡이 어선들이 줄
지어 서 있고 인근에는 멸치 말리는 소란이 제법이지만, 그 모든 것이
전혀 복잡을 떨지는 않는다. 이런 것이 여유다.
아마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서편제'의 촬영지라
는 것을 알 것이다. 물론 섬에서는 이곳을 관광지로 선전하고 있지만
막상 현장에 가 보면 아직은 전혀 관광의 때가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은 바로 당리 뒷산의 황토길. 그러나 여름철에는 반
드시 이런 한적을 누리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 길을 바라보며 오늘의 도로가 생각난다. 지금의 길은 차가 그
주인이다. 여기 이 청산의 길은 사람이 주인일 수 밖에 없다. 뭐가 더
좋은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세태의 변화를 지적하고 있을
따름이다. 오던 길에 영암에서 해남으로 넘어오는 고개 위에 붙어있던
과속 경고 표지판이 떠오른다. "아빠! 우리차는 제트기가 아니잖아요?"
제트기가 되고 싶을 정도의 심정을 갖게한 도로의 정체는 아마도 서로
가 서로를 죽이는 상쇄의 한 단면일 것이다. 서로 바쁘고, 그래서 모
두들 차를 사고, 또 그래서 길은 막히고,마침내 틈만나면 과속으로 몰
아가는 길의 현재 상태는 생각 자체를 우울로 끌어갈 뿐이다.
이른 아침 그 길가 녹두밭을 매던 할머니는 그 풍경만으로도 여유
와 한적을 표상하고 있다.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수련이 되는 것이지만 할머니는 구경거리가 아니
다. 그분은 삶을 끌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말을 붙인다. 아무 소용에
도 닿지 않는 쓸데없는 말이다. 대답 역시 자연이다. 길을 어루만지듯
쓸고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다.
한쪽으로는 농가풍의 당리가 있고 반대쪽에는 어촌인 도락리가 자
리잡았다. 그래서 파란 하늘과 바다가 황토를 에워싸고 그 바람과 물
(풍수)을 잉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리 마을에 서편제의 영화배우 김명곤이 어린 오정해와 그 의동생
에게 소리를 가르치던 초가집은 지금은 비어 있었다. 영화가 나온 뒤
집주인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시가보다 높
은값에 집을 내놓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가 사
람을 버려놓았다고 말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
다.생판 낯선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와 사진기를 들이댄다면 왜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외지에서 청산에 들어가는 입구는 도청리이다. 그런데 배에서 내리
자마자 특이한 현상을 만나게 된다. 유독 고양이가 많다는 점이다. 도
청뿐이 아니라 섬 곳곳에서 고양이는 눈에 뜨인다. 주차해 있는 차 밑
에는 으레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정도다. 청산 사람들도 그것을
인정한다. 국화리 뱃머리에서 멸치를 쪄내고 있던 할머니, 며느리, 손
녀도 그렇다고 그러고, 당리 서편제 초가집 옆집 할머니도, 읍리의 향
토사학자도, 진산리 해수욕장의 가겟집 아주머니도, 권덕리에서 낚시
꾼 안내를 업으로 하는 아저씨도, 모두들 고양이에 대해서는 얘기들을
한다. 쥐 때문이란 것이다.
고양이를 기르게 된 원인이 쥐에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데 누
가 먼저 시작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어찌나 쥐들이 많았
는지 곡식은물론이고 물건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쏠아댔다고 한다. 그
래서 60년대 중반부터 집집마다 고양이를 분양해서 기르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고 완도보다 멀리 떨어진 금일도에 가서 고양이를 사다가 기른
것이 이렇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왜 쥐가 많았을까. 여기에는 풍수적 설화가 대답을 한다. 청산리
남쪽 끝 권덕리 뒷산 위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다. 어느해 이 마을
에 호열자란 전염병이 창궐했다. 어느 도승이 지나다 보고 그 바위를
범바위(호암)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빨리 쥐바위로 이름을 바꾸라
고 했다는 것이다. 시키는대로 했더니 과연 호열자는 사라졌는데 이번
에는 쥐떼가 들끓어 파농에 가까운 흉년이 들어 살 수가 없어 다시 범
바위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 설화의 골자이다.
호열자란 콜레라이다. 콜레라는 쥐통이라고도 한다. 호열자, 호암,
쥐는 콜레라의 같은 계통에 속하는 용어가 되는 셈이다. 설마 범바위
를 쥐바위로 개명했다고 해서 쥐가 들끓게 된것은 아니겠지만 그 설화
로 인하여 섬주민들이 쥐에 대하여 경계심을 늦추게 되지 않는다면 비
합리적으로 꾸민 얘기라 한들 뭐 그리 대수겠는가. 전통은 새로운 해
석으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예가 될 수도 있는 풍수 설화이다.
그런 전통에 대한 삶의 현장에서의 재해석은 읍리 고인돌 무리에
서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큰 것 세개만 눈에 잘 뜨이는데 동쪽 것이
아버지 무덤이고 서쪽것은 아들 무덤이며 그 사이에 있는 네댓개 가량
의 조그만 돌무더기는 부자의 영혼이 서로 왕래하도록 징검다리 구실
을 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또 그 앞에는 괴석의 커다
란 고인돌이 있는데 이것은 어머니 무덤이다. 어머니는 뒤에서 다소곳
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앞에서 부자가 영혼의 교류를 한다. 그 상
징구조가 마음을 울린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것
이 아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농부 양홍렬(47)씨의 현장 해석이 의미
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도청항에 돌아와 밤을 맞는다. 섬의 고적감, 그것을 참고 살
아가는 힘이란 무엇일까? 컴컴한 부둣가에 중학생 또래의 소녀들이 밤
바다를 바라보며 머리를 맞대고 앉아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고적의 섬에서 그들은 무슨 꿈을 나누고 있는 것일까, 아니 무슨 고민
을 위로받고 있는 것일까? 나도 딸을 키우고 있어 잘 알지만 그들에게
도 어른 못지 않은, 어떻게 보자면 어른보다 휠씬 더한 인생의 고뇌가
있을것이다.무릇 삶은 고적과 고뇌의 누적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
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린 소녀들의 고뇌는 마음 아프다. 그저 나
그네의 심회일 뿐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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