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인간을 대립항으로만 놓는 상투적 반전영화들은 가끔 함정에
빠진다. '전쟁도 결국은 사람 살자고 하는 것'이란 엄중한 현실에서 비
켜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출신 세르게이 보드로프의 영화
'코카서스의 죄수'(11월 1일 개봉)에 담긴 '전쟁터의 인간애'는 설득력
있다. 그것은 낮으나 단호한 목소리에 실려 관객 가슴까지 와 닿는다.
1백년 넘게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러시아와 대립해온 체첸의 어느 산
악마을. 이들에게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 당사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는
싸움이자 생존의 방식이다. 총성과 군가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마을엔
순박하지만 필요하면 기꺼이 총을 드는 체첸의 회교도들이 산다. 마을
노인 압둘은 러시아군에 포로로 붙잡힌 아들 때문에 불행하다. 어느날
마을 민병대들이 러시아 병사 2명을 생포한다.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
고 전선에 끌려나온 러시아 청년 바냐와 그의 노련한 선임자 사샤였다.
두 병사를 집에 가둬놓은 노인은 러시아군에게 잡혀간 자기 아들과 이
포로를 교환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 병사 둘이 체첸 마을
을 탈출하려다 선임자 사샤가 사살당한다. 압둘의 아들까지도 러시아군
감옥을 탈출하려다 죽는다. 포로 교환의 꿈은 물건너갔고 생포한 러시아
병사는 쓸모 없어졌다. 이때쯤 노인은 러시아 병사 바냐를 야산으로 끌
고간다. 그리고 총을 빼든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극적인 라스트는, 증오
가 증오를 낳고 살육이 살육을 부르는 악순환 고리를 최후의 순간에 끊
는 인간의 결단이다. 그도 결국은 참전한 전사이자 어느 아들의 아버지
였다.
이 영화를 흔한 전쟁소재 영화와 구별짓는 것은 코카서스의 신비한
풍광들이다.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는 그림같은 산악, 문명과 등진듯 아
득한 집들의 토담. 포성 사이 사이 휴식처럼 수놓이는 마을 사람들 민속
춤과 격투기. 여기에 휘파람소리 곁들인 유장하고 쓸쓸한 슬라브 민요들
이 신비한 분위기마저 만든다. 포로가 된 러시아 병사 바냐는 '적진' 체
첸에서 엉뚱하게도 정을 느낀다.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압둘의 딸 디나의
은근한 사랑의 상대가 되기도 하고 순박한 마을사람들의 귀여움도 받는
다. 영화가 그런 인간애를 감상을 툭툭 털어내며 보여줄때 관객은 증오
가 얼마나 덧없는가를 새삼 느낀다.
나쁜놈과 좋은 편을 갈라놓지도 않고 혁혁한 무용담도 없이 '어떻게
살것인가를' 진지하게 묻는 영화다.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
화처럼 시골 마을사람들까지 과감하게 배우로 기용한 진솔 담백한 연출
이 그 분위기를 돋운다. 지상의 인간이 화해하는 라스트에서도 하늘의
러시아 헬기 편대는 계곡을 넘어 체첸 마을을 보복 공습하러 떠난다. 그
치지 않는 인간의 잔혹성에 화살을 겨누는 패러독스다. < 김명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