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가수 밥 딜런은 63년 그 유명한 CBS TV '에드 설리번 쇼' 출연
요청을 거부했다. CBS가 자신의 노래를 금지시켰다는 이유였다. 방송
사측은 고위층 인사를 비판한 내용의 노래가 사회에 미칠 파장을 두려워
했다. 물론 당시 포크팬들 시각은 달랐다. 그들은 밥 딜런 노래가
왜곡된 사회 현실을 솔직히 묘사하고 고발한다고 평가했다. 그의 통기
타 음악에 열광했다.
동료가수 존 바에즈는 "우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만 말하
지 못하는 것을 딜런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 개척기와 40년대 공
황기를 통해 발전한 포크는 50년대 말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킹스턴 트리오의 '탐 둘리(Tom Dooley)', 브라더스 포의 '푸른 초
원(Greenfields)', 피터 폴 앤 메리의 '레몬 나무(Lemon tree)'같은 포크
송이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그러나 포크가 활짝 꽃 핀 것은 '저항성'으로 세례받은 60년대 들
어서였다. 젊은 하버드대학 출신 케네디가 막 대통령에 당선되고, 2차
대전때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가 대학에 갓 입학한 시기와 맞물렸다.
당시 대학생들이 본 미국 현실은 부모 세대와 전혀 달랐다. 입으
로는 민주주의와 평등-평화를 외치면서 흑인을 차별대우하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미국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공민권과 반전운동 불길이 달
아올랐다.
젊은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압도적 성원 속에 '저항 포크의 기수'
밥 딜런과 존 바에즈가 출연했다. 밥 딜런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으로 반전 기치를 들어올렸다. 존 바에즈는 '도나 도나'
(Donna Donna)로 자유의 가치를 설파했다. 통기타와 함께 청바지 생맥주
와 맞물린 베이비 붐 세대의 '청춘문화'를 대변했다.
포크는 64년 영국 록그룹 비틀스의 미국 침공을 계기로 중대한 변
화를 겪었다. 새로운 사운드 조류인 록을 차용하게 된다. 밥 딜런은 '배
신자'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무대에서 전기 기타를 잡았다. 그것이 바로
포크와 록이 결합된 '포크록'이었다. 포크는 사운드를 빌려오는 대신 록
에게 '저항의 메시지'를 가르쳤다. 록시대라는 60년대 음악 조류에서 포
크가 중요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틀스 노래에 메시지가 이입된 것
도 포크의 영향이었다.
'밥 딜런과 존 레논이 뭉친' 포크록은 즉각 베이비 붐 세대 '음악
문법'으로 떠올랐다. 포크 지지층인 엘리트 세력과 록을 향유하는 노동
계급이 제휴한 셈이었다.
60년대 음악이 폭넓은 계층의 지지 속에 기성 사회를 비판할 수 있
었던 사회적 배경이다. 버즈, 사이먼 앤 가펑클, 도노반, 셰어 같은 인기
포크록 가수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러나 70년대 보수적 분
위기는 포크의 위력을 한풀 꺾었다. 70년대 중반이후에는 전쟁이나 민주
화처럼 저항하고 고무할 대상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주류에서 후퇴했을 뿐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저항 음악인
의 노래를 통해 포크의 기조는 유지되었다. 포크는 80년대 말 레이건과
부시 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다시 부흥기를 맞는다. 트레이시 채프먼과 수
잔 베가를 비롯한 여가수들이 맹활약했다. 트레이시 채프먼은 '혁명을 말
하며(Talkin' about a revolution)'로 포크의 저항정신을 새삼 일깨웠다.
지금도 포크는 대중음악의 주요 인자로 여러 장르 음악에 살아 있
다. 하루가 다르게 부침하는 유행 물결 속에서도 '복고 음악' 포크는
끊임 없이 변주되고 재생산되며 도도하게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