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장인 추용근(35)씨는 '검은 색'을 위해 삶의 절반을 바쳤다.
조선시대 광해군때 금속공예의 분야로 개발돼 영-정조시대 전성기를
맞으며 3백50년간 이어져 고려 '상감청자'와 더불어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빛깔이 되어온 오동상감기법의 계승자가 바로 그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은 19일 국내에서 유일하게 오묘한 흑빛예술
을 펼쳐온 그를 '한국고유기능전승자'로 선정했다. 한 분야에 20년 이
상 전념해온 전문가만을 대상으로 해 뽑는 한국고유기능전승자에겐 매
월 80만원의 장려금이 5년간 지급된다.
"진짜 색을 내보지도 못했는데, 상이라니…. 아버님 뵙기가 부끄럽
습니다.".
전북 임실군의 원불교 사찰 행사장에서 작업을 지휘하다 수상소식
을 전해들은 추씨는 부친 추옥판옹을 떠올렸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65호로 아들에게 '흑색 꿈'을 심어준 아버지는 6년전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 추씨가 보아온 건 매일 금과 동을 화덕에 녹인 뒤 망치
질로 오묘한 빛깔을 내는 아버지의 작업광경 뿐이었다고 한다. 한 여
름 무더운 날에도 수백도가 넘는 좁은 방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업'을
아버지는 굳이 자식들에게 이어주지 않으려 했다. 잠시 가르쳤던 큰아
들이 중도에 힘들어하자 그만둔 후 4남4녀중 그 누구에게도 망치를 맡
기지 않았다.
하지만 셋째아들이었던 추씨는 16살 때인 78년 전북산업디자인 전
람회에 출전, 장려상을 따내며 아버지를 놀라게 한다. 몇차례 작업장
을 드나들며 어깨너머로 구경했을 뿐인 아들에게서 아버지는 젊은 시
절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때부터 대물림이 시작됐다.
"금과 동을 합금한 뒤 녹여서 장신구에 입히는 게 오동상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옛날에는 담뱃갑 등에 문양을 내는 것에 그쳤지만
응용분야는 무한합니다. 쉬울 것 같아도 농도와 온도가 맞지 않으면
붉게 변해버려요. 정신을 한곳에 집중시켜야 낼 수 있는 진짜 검은색,
아버님은 항상 제게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리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학업을 중단하고 기술익히기에만 몰두해
전승공예대전, 전국공예품경진대회 등 굵직한 대회에서만 16차례나 입
상한 추씨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에 있는 20여평 남짓한 작업
실은 매년 국민대, 원광대 등에서 몰려오는 2백여명의 대학생들이 추
씨의 굵은 손마디에서 그려지는 학과 거북문양을 바라보며 터뜨리는
탄성으로 가득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