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날의 히어로는 MBC TV 인기수사물 '수사반장'이었다. 수사반장
은 스토리텔링이 샬록홈즈 처럼 숨막히는 두뇌플레이로 반전에 반전을 거
듭하다 끝내 범인을 잡는 그런 하이테크가 아니었다. 반장(최불암)이 특
별히 미남이거나 전광석화처럼 몸을 날려 권총을 뽑는 '전문가'도 아니고,
콜롬보 같이 어리숙해 보이지만 재기가 번득이는 그런 명탐정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형사이야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런데도 나는 '반장'의 신봉자였다.
세상에 어느 직업인들 휘파람불며 슬렁슬렁 지내랴마는 반장은 매 사
건마다 진실로 고뇌했다. 그리고 인간적이었다. 용의자를 족치고 악을 쓰
지 않았다. 때리고 윽박지르기보다는 설렁탕을 시켜주고 담배를 권하며
용의자의 양심에 호소했다. 그리고 반드시 '승점'을 따냈다.
'반장'은 언제나 텁수룩한 머리에 다리미질 한 흔적이 없는 옷을 걸친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과중한 업무를 막걸리 한사발로 푸는 그는
참으로 '친근감을 주는 높은 사람'이었다. 사건이 미궁에 빠져 그가 괴로
운 얼굴로 담배를 피울 때면 나도 답답해 꼭 담배를 붙여 물었다. 흉악범
을 잡아 교도소로 보내면서 '인간은 미워하지 말자'든가, '우리사회 전체
가 공범' 이라는 멘트를 읊조릴 때는 나는 괜히 숙연해지곤 했다.
나는 늘 '반장'을 닮으려 애를 썼다. 자식들한테도 '반장'같은 아버지
가 되고 싶었다. '반장'을 좋아하다보니 함께 출연하던 김형사 조형사 남
형사도 덩달아(?) 내 가슴속의 우상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사실은 '수사반장과 그 팀'만이 아니고 '수사반장'에 등장하는
범인들도 나의 우상이었다. 형사들의 추적을 받고, 혹은 붙잡혀 수감되는
죄인들이었지만 '수사반장'을 닮았는지 모두가 '인간적'이었다. 나는 그
들이 수갑찬 두 주먹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어머니'를 부를 때마다 얼마
나 울었는지 모른다. '반장'이 내게 인간미를 전수했다면 범인들은 바른
삶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 타산지석이었다.
'수사반장'이 TV에서 퇴장하면서 내 우상도 사라졌다. 이젠 희미한(?)
전설일 뿐. 섭섭한 것은 요즘은 '반장'처럼 '고뇌하는 높은 사람'이 보이
지 않는다는 것이다. 묵묵히 박봉을 견디며 미소를 잃지 않고 부하를 다
독이는 '반장'의 인간미는 찾아볼 수가 없고, 일만 터지면 수습보다 책임
회피에 급급하는 인사들로 가득한 것만 같다. 더욱 슬프다 못해 분통이
터지는 것은 '범인들'마저도 인간다운 구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부르며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남자다운 범인이 왜 한
명도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