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란영화는 일본영화와 함께 가장 큰 주목
을 끌었다. 이란영화 열기는 일반에 생소할 수도 있지만, 한국 마니아
층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80년대 후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를
발견한 유럽은 이어 또 다른 거목 모흐센 마흐말바프를 발굴해냈다. 2∼
3년전부터는 자파르 파나히, 알리레자 라이시안, 파라드 메흐란파르 같
은 신진 이란감독들도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있다.
키아로스타미만 알던 한국 팬들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란영
화의 저력을 확인하고, 다른 감독들 영화에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 본격
적인 이란영화 바람을 일으켰다. 초청된 작품 4편은 상당한 완성도로
일찌감치 화제에 오르며 모두 매진됐다. 여기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자파르 파나히, 파라드 메흐란파르가 초청 게스트로 참가해 열기를 부
채질했다.
'체리향기'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터라, 부산국
제영화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팬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영화로 꼽았다.
이 걸작에는 절정에 오른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기량과 인생에 대한 통
찰이 담겨있다. 자살을 결심한 한 남자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을 유
장하게 다룬다. 13일 오후5시 첫회 상영은 몰려든 관객들로 발디딜 틈
없었다. 전날 오전 기자시사회를 따로 가졌지만 기자석도 매진돼, 서서
보는 관객까지 있었다.
상영이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수준높은 질문공세에 키아로스
타미는 놀랐다. "아마추어 배우들을 주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방인인가." 구체적이고 예리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자파르 파나히의 신작 '거울'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는 기발
한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이 영화에서는 주연 소녀배우가 촬영 도중 싫
증을 느껴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관객들은 이후 따라
가기 시선으로 소녀가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찍어낸 이 작품을 때로 폭
소를 터뜨려가며 진지하게 관람했다. 파나히는 무대에 올라 "이 영화
아이디어를 작년 부산에서 얻었다"고 말해 열띤 박수를 받았다. '거울'
은 국내 수입이 결정됐다.
파라드 메흐란파르의 '종이 비행기'는 신인감독을 대상으로 한 '새
로운 물결' 부문 출품작인데도 만원을 이루는 호응속에 상영됐다. 산간
유목민 마을에 기자재를 갖고 가서 영화를 보여주는 부자 이야기를 다
룬다. 영화와 현실을 함께 얽어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수줍어하며 말
문을 연 메흐란파르는 "테크놀로지와 전통사회 간 갈등과 상호작용을
담아내려 했다"고 밝혔다. 김지석 아시아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는 "소박
하지만 아름다움이 살아있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
했다.
감독 마흐말바프가 내한하지 않았지만 '가베'도 '체리향기'와 함께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데 이어 관객들에게서도 큰 반응을
얻어냈다. 유목민들의 힘든 삶과 그들이 짜내는 페르시아 양탄자의 세
계를 포개어다룬다. 시적이고 상징적인 영상으로 한국 영화팬들에게 새
로운 영화문법을 보여줬다. < 이동진기자 >